소개와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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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에서 돌아옴


학회 일정 때문에 광주에서 바로 제주도로 이동했다가, 어제 귀환했습니다.

이번 원정의 키워드는 어둠과 허세.


후배가 자꾸 제 등과 다리를 만지려고 해서 귀찮았음.


박창범-라대일 논문에 대해서 또 짧게 몇 마디. 반테러 동양사


그 논문에는 문제가 여러가지인데, 사람마다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르게 편중시킬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에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록에 나오는 일식의 식분 분포를 합산했을 때 나오는 최대 식분 평균 지점은 실제 관측지(대체로는 그 나라의 수도)이다."

라는 명제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라 논문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확률 검증이 차지하는데, 사실은 이건 저 명제에 대한 증명이 아니었다. 

비록 그 글을 (잘못)읽은 사람들이 그런 인상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문제는 다수결이 아니니까 말이다. 설령 입증하려고 시도했다 치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전제가 분석 과정 전체에 드리워져 있을 수도 있고, 분석한 '뭔가' 가 결론과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통계 처리의 대상이 되는 사건들은 경험적으로 실체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는 당장 잘 안 와 닿을 수도 있다. 잘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말하자면 이런 거다. (정확히 이 문제와 같은 건 아니다.) 누군가가 UFO 의 실존을 증명하려고 한다고 하자. 이 사람이 우선, UFO 는 평균적으로 크기가 10km 이상이며 속도는 시속 1000km 정도라고 전제하고, 인간의 눈이 그런 물체를 보고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다른 물체를 그러한 것으로 오해할 확률을 분석해서 상당히 낮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해도, 그 분석이 UFO 의 실존을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전제 자체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박-라 연구에서 저 명제가 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로 제시된 것은 (1)고려시대의 식분 평균과 (2)하대 신라의 식분 평균인데, 제시된 데이터에는 불명확한 점도 있고, 오류도 있었다. (1)의 경우에는 사실 고려시대에 개경에서 관측된 일식들을 합산해 보면 그 식분 평균 최대지점이 고려 영토가 아닌 중국 길림성 남부에서 발견되며, (2)의 경우에는 실제 최대 식분평균 지점은 한반도 남동부가 아니라 일본 규슈 남부였다.

즉, 박-라가 위 명제가 잘 맞는다는 증거로 사용한 두 개의 직접적인 실물 증거 사례는 사실 모두 증거 능력이 없는 것들로, 설령 다른 예시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결론을 뒷받침하려 한다 해도 왜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지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왜냐하면, 삼국이나 고대 일본이 그런 '이상한 경우' 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도 박-라는 이러한, 귀납적으로 전연 검증되지 않은 명제를 적용하여 삼국과 고대일본의 일식 관측 위치를 찾아내려 했다.


귀납적으로 검증한다는 것에 대해서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과학적인 명제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에서 귀납적으로 검증을 할 때는, 가장 악의적인 비판자조차도 "저렇게까지 하다니..." 라며 한숨을 쉴 정도로 철저해야 한다. 한, 두개 해 보고 난 다음에 이정도면 되었겠지, 라면서 바로 '그 명제가 맞다고 가정하고' 확률 논의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과학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저항감이 느껴진다. 하물며 그 한, 두번 해 본 것 조차 실상은 별 의미가 없다면, 어쩌겠는가.

박-라의 연구 대상은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사료였던 까닭에 자연과학은 아니지만,(자연과학이 아니라고 해서 훌륭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는 방법과 이념을 사용하였기에 역시 기준을 같이 두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이른바 이 박-라 논문에 대한 비판적인 검증 시도에 대해서 재비판을 가하시는 분들이 주로 거론하신 것으로 식분 하한선의 설정 문제가 있는데, 사실 그 얘기도 의미가 없다. 애초에 삼국사기에는 식분율이 얼마였는지는 안 쓰여 있거든. 고대 사서에는 분명 식분율이 얼마 이상인 것만 적혀있었을 것이다... 라거나, 식분율이 큰게 더 많이 적혀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전제' 인 셈이다. 그 전제가 참이라는 것 부터 먼저 증명해야만 하겠지.



**박-라의 오차분석이, 그렇다면 "삼국의 일식 기록은 중국 기록의 전사가 아니라 독자적인 관측 기록이다" 라는 (원래 증명하려고 했던) 결론은 과연 지지하는가. 나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설명하려면 좀 더 복잡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으므로 언젠가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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