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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w | 2010/12/31 23:59 | 트랙백 | 덧글(15)

내 친구는 역사학자 -"에우메네스 충신설"<2>-

이 남자, 단순한 찌질이는 아니었다.





이와아키 히토시는 『히스토리에』단행본 1권에서 이런 말을 했다.1
 

"에우메네스는 역사상 이름이 높은 여러 전장- 그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분명 수많은 작전에도 참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왕이나 다른 장수와 함께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그가 '기록하는 쪽' 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던 어느날, 그는 기록하는 일을 그만둔다. 그때부터 기록자는 '기록당하는 쪽' 이 되어 역사의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에우메네스도 분명 '기록되'었다. 기록되지 않았다면 2천년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의 행적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에우메네스의 일생과, 관련 사실(史實)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다양한 사료 가운데, 그 분량과 지명도를 고려하여 이 자리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다.


1. 플루타르코스의『영웅전』에 수록된 에우메네스 전기.

2. 로마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네포스(역시 BC 1세기)가 쓴『외국 명장전』에 포함된 에우메네스 전기. 

3. 시칠리아 사람 디오도로스(BC 1세기)가 저술한 『세계사』의 18권과 19권.




이제 각각의 사료가 지닌 특징을, 에우메네스 문제와 관련해서 한 번 살펴보자.


먼저 플루타르코스의『영웅전』의 경우,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독자의 도덕적 입장에 따라서는 에우메네스를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하게끔 할 수 있는 일화들도 소개하고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특별히 에우메네스에게 야박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다. 『영웅전』은 대개 여러가지 일화를 모아놓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인물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도, 악덕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즉, 플루타르코스의 영웅들은 훌륭하기만 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각해 볼 점도 있다. 대개 유명한 인물 주위에는 여러가지 소문이 돌아다닌다. 그 가운데는 와전된 정보나 정적들이 퍼뜨린 악의적인 음해도 많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일화를 수집할 때,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헛소문인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었을까?

이런 면에서 보면 일화를 모아놓는 구성 방식을 취한『영웅전』은 후세에 풍부한 얘기거리를 전해주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 진위와 사료적 가치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음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의문의 여지가 있' 다는 점을, 자신이 선호하는 영웅에 관한 부정적인 일화를 기각하는데 전용해서야 또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에 관한 플루타르코스의 기술을 많은 부분에서 무시해 버리거나 부정했는데, 이것이 과연 사료 비판인지 아니면 사료 '편집'인지 모르겠다.)



<어쩐지 갑자기 등장>



다음으로, 코르넬리우스 네포스라는 사람은 로마 공화정 말에서 제정 초기까지 살았던 인물로, 유명한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구였으며 많은 전기를 썼다. 위에 소개한 『외국 명장전』이라는 작품은, 그가 쓴 16권짜리 전기인 『명사전』이라는 시리즈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외국 명장전』으로 말하자면,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등 분명 가치는 있지만 오류들이 제법 발견되는데다 도덕적인 의도가 너무 강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2,3

그렇다면 이 책에서 네포스는, 에우메네스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지난번에 소개한 네이버 백과 글에 인용된 문구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코르넬리우스 네포스는 에우메네스에 대해 상당히 동정적이고, 호의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드로스 혈육의 유일한 수호자" 였으며, 에우메네스가 살아 있을 때는 "왕인 척 하던" 디아도코이들도 감히 정말 왕으로 불리지는 못했다는 것이다.4


네포스가 생각하기에 디아도코이들은 페르디카스부터 시작해서 모조리 한때 친구였던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권세를 누리고 싶어하던 자들이었다. (이는 오늘날의 독자가 지닌 시각과도 유사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우메네스 혼자만이 옛 동료와의 신의를 지키고 왕가를 수호할 의무를 다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평가는, 사실을 지나치게 도덕적인 의도에 맞추어 편의적으로 해석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에우메네스가 살아 있을 때에는 과연 디아도코이들이 왕으로 불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디아도코이 가운데 최초로, 안티고노스가 왕의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BC306년의 일로, 이 때는 이미 에우메네스가 죽은 때(BC 316)로부터 10년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즉, 디아도코이들이 왕호를 사용하지 못한 것이 정확히 에우메네스 때문이었다고 하기란 힘들다. 여기서 네포스의 평가는 굉장히 강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다소 견강부회하는 듯 하다.



마지막으로 디오도로스의『세계사』에 수록된 에우메네스 관련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이 책은, 오늘날에는 산실된 고대의 자료들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데다가, 특히 에우메네스 문제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이 책에서 디아도코이 전쟁을 기술할 때 주된 참고 자료로 삼았던 것이 바로 에우메네스의 동향 사람이자 친구로, 전쟁기간동안 그와 행동을 함께 했던 "카르디아의 히에로뉴모스" 가 쓴 사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5 만화 『히스토리에』에서는, 에우메네스의 좀 덜떨어진 형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나중에 안티고노스와 데메트리오스 등 안티고노스 왕조의 지배자들 밑에서 일했는데, 이를 통해 신뢰도가 높은 정보를 풍부하게 수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디오도로스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대 문헌에 나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약 반세기의 역사는 바로 히에로뉴모스가 주요 소스였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6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우리는 플루타르코스와 네포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사람들이라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반드시 뭔가 근거가 되는 자료를 수집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전기를 썼던 것이다. 디오도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근거 자료' 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히에로뉴모스였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디오도로스의 책에서, 히에로뉴모스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목이 여러 군데이다.5


흥미롭게도, 현전하는 사료 가운데는 이 디오도로스『세계사』에서야 말로 에우메네스 충신설이 가장 직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필시 히에로뉴모스의 서술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단적으로, 에우메네스가 안티고노스에게 잡혔을 때의 일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를 가두고,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했다. 그는 자신에게 의무를 다할 뛰어난 장수가 몹시 얻고 싶었지만, 에우메네스를 믿을 수가 없었다. 올림피아스(*알렉산드로스의 모후)와 왕에 대한, 에우메네스의 충성심 때문이었다. 사실 프리기아의 노라에서 안티고노스가 그를 풀어준 이후, 에우메네스는 그야말로 전심전력으로 왕을 위해 싸워왔던 것이다. 또한 (안티고노스 밑의) 마케도니아인들도 에우메네스의 처벌을 원하고 있음을 알았으므로, 그는 에우메네스를 죽이도록 했다. 그러나 과거 둘 사이의 우정을 생각해서 그의 시체를 화장한 뒤 항아리에 넣어 가족에게 보내주었다. 


이제 사료비판이라는 측면에서(라고 쓰고, '빈정거리며' 라고 읽는다) 생각을 해 보면, 히에로뉴모스는 에우메네스와 동향 출신의 친구였을 뿐 아니라(그리고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의 친척이었을 것이다)7 디아도코이 전쟁 초기에 그와 행동을 같이 했다. 즉, 이 기간동안 그는 에우메네스와 심정적으로 유착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그가 에우메네스에 관해 극히 호의적으로 서술했다면, 이를 마땅히 부정하기도 어렵지만 담백하게 받아들이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남는게 사실이다. 예컨대 위에서와 같이 에우메네스의 행동이 고결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라던가, 에우메네스는 일을 잘 했지만 부하들이 배신하거나 무능해서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상황이 굉장히 기묘한 데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여기에 어떤 인물에 대한 매우 호의적인 서술이 있다. 그것이 특별히 사실과 다르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 이런 얘기들의 출처를 따져보니, 십중팔구는 그와 일을 같이 하고 다녔던 '절친' 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어쨌건 히에로뉴모스가 역사를 썼을 때 에우메네스는 이미 죽은 다음이다. 그렇다면 굳이 죽은 사람을 칭찬해서, 자신의 다음번 주군이 된 안티고노스를 상대적으로 덜 빛나 보이게끔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에로뉴모스가 역사를 썼던 것은 그 안티고노스도 죽고, 안티고노스의 손자인 안티고노스 고나타스가 지배하던 시절의 일로 보인다.7 파우사니아스(2세기에 활동한 지리학자) 같은 사람은 히에로뉴모스가 안티고노스 고나타스를 빼면 모든 지배자들에 대해 불공정한 서술을 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는데,8 이런 면에 비추어보면 그가 옛 친구의 일을 동정적으로 서술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았을까. 좀 더 불신에 찬 눈으로 보자면, 에우메네스와 행동을 함께 한 자신의 고결함을 은연중 드러내는 결과도 되었을 것이고. 
 


"으헝헝 불쌍한 내 친구"
 


이상 에우메네스와 관련해서 중요한 세가지 사료들을 간략히 검토해 보았다. 에우메네스의 일생 뿐 아니라, 실은 그의 행적을 기록한 사료에도 뭔가 기이한 비틀림이 조금씩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견을 말하자면, 고대 사료에는 이런 면이 많다. 대국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속속 의문스러워진다. 하물며 인간의 '내면' 과 연결된 문제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속도 알기가 어려운데 2천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의 속을 알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마무리하면서, 이번 글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자료의 부족과, 그로 인해 많은 부분을 추측으로 연결해야 하는 어려움은 사학에서 뿐 아니라 사학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디오도로스를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책이 히에로뉴모스의 기록에 기반을 두고 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기는 하지만, 실제 히에로뉴모스의 기록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히에로뉴모스의 역사책에 정확히 무슨 말이 적혀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높은 추론들 사이를 건너왔다 하더라도, 추론은 추론이다. 한계는 있다.

지난번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단지 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로 둔갑해서야 안 될 일이다. 다만 에우메네스에 관한 여러 기록들이, 그렇게까지 확고부동한 것은 아니며 다른 모든 사료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정도의 뜻으로만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면 다음 글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문제- 예를 들면, 에우메네스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경원시당했다던가- 들에 대해서도 경박한 의혹의 잣대를 들이대 보도록 하겠다.




참고

1 이와아키 히토시,『히스토리에 1』, 서울문화사(한국어판), 2005.
2 동아백과사전(1988) "네포스Cornelius Nepos"
3 1911 Encyclopædia Britannica / Nepos, Cornelius
4 C.Nepos, 『De excellentibus ducibus exterarum gentium 』, Eumenes  
5『Diodorus of Sicily IX』Havard University Press (1947) 
6 M.M. Austin, The Classical Review, New Series, Vol. 33, No. 1 (1983)
7 Truesdell S. Brown,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 Vol. 52, No. 4 (Jul., 1947)
8 그런데 실은 파우사니아스의 비판 자체도 일종의 '카더라 통신' 이라는 주장이 있다. 위 Truesdell(1949)의 각주 79번.


by Shaw | 2009/07/05 22:51 | 타락한 유희의 場 | 트랙백 | 덧글(9)

플루타르코스 선생, 에우메네스를 쏘다. -"에우메네스 충신설" <1>-



※미리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 글이 비록 "에우메네스 충신설" 에 대해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쓰여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에우메네스는 사실 충신이 아니었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며, "충신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다만 사료라는 것도 인생만큼이나 복잡한 것이므로, 그 안에서 한 길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만 길을 잃고 헤매어 보는 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이 남루한 자리에서나마 한 번 펼쳐보려는 것입니다.  

※"에우메네스 충신설" 이라는 것은 제가 편의상 붙인 이름으로, 제일차적으로는 에우메네스가 마케도니아, 혹은 그 왕조에 충성(loyalty)을 지켰다고 보는 관점을 뜻합니다. 본문 중간에 인용된 위키백과와 네이버백과의 글을 종합하면, 이 관점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대략 망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날이면 날마다 하는 인물 평론이 아닙니다. 내 말 한 번 믿어 보시라니까요."







카르디아의 에우메네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기관이었던 인물.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이 두명의 걸출한 마케도니아 군주를 20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대왕 사후의 혼란기에는 왕실의 편에 서서 제국의 분할과 권력 찬탈을 꾀하던 무장들, 특히 안티고노스와 대적했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유명한 만화『히스토리에』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최근 급격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인물의 일생은 이미 다양한 웹문서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여기에서 또 길게 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
네이버 백과 "에우메네스"
위키 백과 "에우메네스"
http://redoctobor.egloos.com/4374899
http://yuratz.egloos.com/2338976
http://yuratz.egloos.com/2340608
http://yuratz.egloos.com/2341928)



대신에 이 글에서 살펴보려 하는 바는, 다수의 글을 통해 에우메네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는, 일종의 "에우메네스 충신설" 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평가에 대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접근성이 높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이미 코르넬리우스 네포스의 전기를 인용하며 다분히 그런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위키 백과의 평가 부분도 그의 충성과 노력, 그리고 비극성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그는 부정할 수 없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장군이었으나, 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충심으로 똘똘뭉친 군대를 지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단 하나의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유능한 장군이었으나, 그의 노력은 단지 그가 출신이 마케도니아인이 아니며, 장군이 아닌 문관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증오하고 경멸하던 장군들과 샤트라프(지방의 태수)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에우메네스는 옳은 일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무자비한 적과 자신의 군인에 의한 배신에 압도당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아마도 근래 많은 분들이 찾아보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에우메네스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플루타르코스의『영웅전』에서 견지하고 있는 입장은, 사실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같은 사람이 제시한 "에우메네스 충신설" 과는 상당히 다르다. 플루타르코스의 관련 견해가 요약되어 있는 <에우메네스와 세르토리우스의 비교> 에서 에우메네스에 대한 평가 부분을 살펴보면, 위에 나온 관점들과는 상이한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경쟁에서 손을 뗐더라면 에우메네스는 명예를 누리며 안전하게 살 수 있었을테지만, 그는 마케도니아 최고 지도자들과의 위험한 항쟁을 기어이 고집했다. 

(2) 만약 에우메네스가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 안티고노스는 그를 잘 대접하고, 중용했을 것이다. 

(3) 에우메네스는 지휘를 하고 싶은 욕망때문에, 자의로 전쟁을 했다.

(4) 에우메네스는 실로 전쟁의 애호가였다. 그는 일신의 안전보다도, 자신의 탐욕스러운 야망쪽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이런 평가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즉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에우메네스가 디아도코이 전쟁때 싸운 것은 기본적으로 권세욕 때문이었다는 것이다.(딱히 충성심에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같은 인물의 같은 일생을 이야기 하면서도 평가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사물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같은 사실이라도 관점을 달리하면 상이한 평가가 나오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우메네스 충신설도 이처럼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왜 저렇게 생각했을까? 그 경위를 정확히 알 수야 없지만, 일단 플루타르코스가 그리고 있는 에우메네스 상(像) 자체가 위키 글에서 묘사된,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같은 존재와는 크게 다르다. 『영웅전』에서 소개되는 에우메네스는 약삭빠르고 일견 기회주의적이며, 책략에도 능한 인물이다.

고전적인 픽션의 주인공으로는 전자의 에우메네스상(像)이 더 적합하겠지만, 그가 '난세에 활약한 재능있는 정치가겸 무장' 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플루타르코스의 묘사에는 딱 잘라 부인하기 힘든 현실성이 생긴다.  

예를 들어 『영웅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화 몇 가지를 요약해서 살펴보자. 
 

1. 원정 중에 알렉산드로스가 자금이 부족해져서 측근들로부터 상납금을 거둔 일이 있었다. 이 때 에우메네스는 300 탈렌트를 바치도록 되어 있었는데, 정작 가져온 것은 100 탈렌트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에우메네스는, 이것 조차도 겨우 겨우 모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의심한 알렉산드로스는 은밀히 부하를 시켜 에우메네스의 군막을 불태우게 했다. 불 타고 남은 자리에서는, 1천 탈렌트가 넘는 금과 은이 녹은 채로 발견되었다. 


2.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총신인 헤파이스티온(*알렉산드로스와 불꽃관계였다는 소문이 있는 인물)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 번은 둘은 어떤 문제때문에 서로 욕설을 퍼부어가며 싸웠다. 그런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헤파이스티온이 죽어버리자, 에우메네스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고인에게 명예를 바치는가 하면, 그 무덤을 꾸미는데 거액을 쾌척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친구의 죽음때문에 비탄에 잠긴 나머지, 그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들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만일 저런 일들이 실제로도 계속 일어났다면, 사람들은 에우메네스가 "겉과 속이 다른 인물" 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플루타르코스도 자신이 수집한 예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에우메네스 관(觀)을 수립했을 것이다. 예화들 자체는 서로 독립된 것이라 해도, 일단 "겉과 속이 다른 인물" 이라는 인상이 정착되어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 전부 무슨 숨은 의도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된다.

에우메네스 충신설이 왜 나왔는가? 그야 후세 역사가들 가운데 그렇게 평가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에우메네스가 어쩐지 충신같아 보이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의 평가 부분을 전재해 보기로 하겠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은 뒤에도 늘 왕의 의자를 한가운데에 놓고 어전회의(議)형식으로 군사 회의를 진행했다알려져 있다. 그리고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아르가이 왕조를 지지하며 왕국의 통일을 유지하려 노력하였다. 로마시대에 그의 전기를 쓴 코르네리우스(Cornelius Nepos, BC 100?~BC 25?)는 에우메네스를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4세의 '최후의 수호자'라고 평하며,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장군들이 감히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지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과연 여기서 말하는대로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다른 무장들이 왕실을 사실상 무시하고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던 와중에, 왕가의 편이 되어 싸울 군대를 조직해서 안티고노스같은 강력한 디아도코이들과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사람의 행동이 항상 그 본심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충성스러운 행동이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다" 는 의심을 가지고 보면 이 역시 자신의 다른 야심을 감추고 한 행동이 아닌가 하고 석연찮게 여길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똑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충의의 발로로 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계산된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에우메네스는 단지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해 일단 정통성 있는 편에 섰던 것은 아닐까?




"하하하, 전 단지 한 황실을 위해 일했던 것 뿐입니다."

"저는 천황님의 충실한 신하죠.♡"



그런데 이런 의심을 개인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단지 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어느새 역사의 진실로 둔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어서 다음에는, 에우메네스 관련 주요 사료들의 성격을 살펴봄으로서 충신설과 비(非)충신설이 대략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by Shaw | 2009/07/04 15:06 | 타락한 유희의 場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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