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와 방침 & 연재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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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개혁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등장 

공화정 로마의 토지 문제
그 많던 공유지는 누가 다 차지했을까

주요 인물의 가계
대적(大敵)의 근원

공화정 로마의 파벌 정치

기원전 129년, 키케로의 경우.

제3차 포에니 전쟁과 그 주변

스키피오, 영예의 길로.
공화국의 챔피언

누만티아 전쟁과 그 주변

누만티아의 일(1)- 누만티아로 가는 길
누만티아의 일(2)- 누만티아 포위 공성

* 연재글 목록은 계속 갱신됩니다.

아름다운 성탄 전야 눈은 쌓이고








하지만 이 세상에 희망 같은 건 없어. 메리 크리스마스.










가칭 '고길동 약자설' 에 대한 엔하위키의 반박에 답하여 아기공룡 둘리 연구





엔하위키에서 '고길동' 항목을 보면 2011년 12월 11일 현재 다음과 같은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도 둘리 때문에 경찰에게 잡혀가고 고생하는 게 한 두번이 아니다.만화를 본 사람들은 아시다시피 이 모든게 다 둘리때문이다. 이러고도 둘리를 쫓아내지 않는 고길동 아저씨는 그야말로 진정한 성인군자대인배다.(…)

또 '고길동은 약자이므로 강자인 둘리 일당의 눈치를 본것 뿐'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보시다시피 저 재산 피해 목록을 보고도 한번도 둘리 일당을 쫓아낼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인간이 아니라 생불[20]이다. 아무리 희동이의 양육건이 있다한들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을 주고 또 입이 셋이나 되는 먹성들을 세끼 꼬박 챙겨주는데다 막상 없어지면 또 걱정[21]으로 줄담배를 뻑뻑 피우는게 고길동씨다.

그리고 둘리와 도우너의 초능력이 부각된 것은 초중반 뿐이며 그때도 고길동 씨와의 싸움에서 직접 초능력을 이용한 적은 드문데다 나중엔 잘 나오지도 않는다. 더구나 고길동 씨가 둘리 일당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전력면으로 '두렵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을뿐더러, 그동안 고길동 씨가 놈들의 말썽에 참다참다 물리적 제재를 가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라는걸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게다가 나중에는 초능력에 아무렇지 않게 대응한다. 도우너가 깐따삐~~~~~~ 초능력을 쓰려고 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미리 준비한 몽둥이에 매단 글로브로 얼굴을 강타하여 초능력을 못 쓰게 만들며 패줬다.

거기다 위에 언급했듯이 고길동 씨는 한번 틀리다고 생각하면 그게 강하든 뭐든 간에 냅두는 성격이 아니다. 저 수많은 염라국 정규군과 그외 무서운 얼음성 해적왕 바요킹을 보고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싸움을 걸었겠는가? 또한 구TV판 1화에서는 둘리를 냅두고 도망갈 때 그 넓은 하천을 슈퍼맨수준의 점프로 단번에 건넜을 정도의 신체능력을 보여주기도 하니 결국 고길동이 '약자'라서 둘리 일당 눈치를 살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부족한 것이다.


우선, 사실 『둘리』를 본 독자 사이에 작품 내적인 요소에 대한 해석이 엇갈려, 토론의 여지가 발생한다는 것은 팬의 입장으로 상당히 기쁜 일이다. 엔하위키의 특성상 레퍼런스가 잘 나오지 않는데, 아무래도 국내 웹에서 고길동 대인배설을 반대하는 글을 비교적 지속적으로 올렸고, 또 '고길동이 둘리 일당을 제압하지 못한다' 고 주장한 것은 필자이기 때문에, 저 글의 작성자분이 정확히 무엇을 보고 논의를 전개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는 일단 필자가 이 주장에 답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과거 글 링크를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고길동 츤데레설, 혹은 고길동 대인배설에 대한 반론은 다음 글에 정리되어 있다.

http://shaw.egloos.com/1887194 (1)

고길동이 희동이 때문에 둘리 일당을 쫓아내지 못한다는 원작자 김수정 선생 본인의 해석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예시를 통해 살펴본 바 있다.

http://shaw.egloos.com/1887553 (2)

또한 고길동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둘리 일당을 몰아내려 했음은 다음 두 글에서 살펴보았다.

http://shaw.egloos.com/1948690 (3)
http://shaw.egloos.com/1950942 (4)

이제 위에 소개한 필자의 입장의 맥락에서, 엔하위키 글의 각 대목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보시다시피 저 재산 피해 목록을 보고도 한번도 둘리 일당을 쫓아낼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인간이 아니라 생불이다.

->이는 가정형의 문장으로, 사실 그리 의미있는 진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일종의 판단으로(즉, '고길동은 생불같은 인물이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므로, 그런 독해는 원 작성자분의 의도와는 어긋날 가능성이 있으나 부득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인용문에서 가정 부분은 참이 아니다. 고길동은 둘리 일당을 쫓아내려는 생각을 작품 내에 묘사된 것만으로도 여러 차례 했으며, 실제 실행에 옮긴 예도 다수 있기 때문이다.(위 링크 3, 4)


2. (1) 아무리 희동이의 양육건이 있다한들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을 주고

->『둘리』의 만화 작품 내에서는, 둘리 일당이 차지한 방이 과연 고길동의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인지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는 원근이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공간 여백이 대단히 크게 잡히는 경우가 많아, 특히 실내 공간은 일반적인 서민 가정이 보유한 주택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은 작품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며, 고길동의 집이 정말 그만큼 넓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고길동의 집안 어떤 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일반적인 주택에서 가장 넓은 방은 안방이다. 그러나 고길동과 박정자 부부가 둘리 일당에게 안방을 내주었다는 식의 언급은 작중 존재하지 않으며, 에피소드 62 「삼불이」에서는 서로가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없다고 항의하는 삼불이와 둘리에게 고길동이 "어쩌지, 빈 방이 없어서, 안방 내주고 우리 부부는 여관에 가서 잘까?" 라고 발언하는 장면이 나와, 고길동과 박정자 부부가 여전히 안방을 사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 (2) 입이 셋이나 되는 먹성들을 세끼 꼬박 챙겨주는데다

->물론 둘리 일당이 특별히 자주 밥을 굶고 있다고 볼만한 증거는 없다. 비록 둘리 등은 식사 상태에 결코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으나, (도우너는 램프 거인에게 "밥 많이 먹는다고 찬물을 끼얹질 않나" 라며 고길동의 험담을 한 적이 있다.) 고길동이 일부러 둘리 일당을 굶기려고 시도한 예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고 말하는 까닭은, 사실 그런 적도 있기는 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92 「연못의 요괴 2」에서, 고길동은 의도적으로 둘리 일당만을 배제하고 가족들끼리만 식사했다. 박정자는 끼니를 거른 둘리 일당에게 나중에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고길동은 둘리 일당을 굶긴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묘사되었다. 이 사건은 또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고길동 가정의 일은 고길동 혼자만의 결정으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령 고길동이 속으로는 둘리 일당에게 밥을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심성이 훨씬 부드러운 것으로 묘사되는 인물인 박정자가 이에 그대로 따라갈지 자체가 의문이다. 논리 구조상으로 볼 때, 이 대목이 고길동 대인배설의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고길동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둘리 일당을 굶길 수 있다는 것이 먼저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의 거론은 단지 작중에서 발견되는 현상을 요약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지닐 수 없을 것으로 본다.


2. (3) 막상 없어지면 또 걱정으로 줄담배를 뻑뻑 피우는게 고길동씨다.


->이는 정확히 무엇을 근거로 나온 말인지 필자는 알지 못하겠다. 아시는 분의 제보를 바랄 따름이다. 혹시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묘사가 있었는가? 필자가 기억하는 한, 원작 코믹스에서는 고길동은 둘리 일당이 사라지면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사례가 작중 지속적으로 출현하며,(에피소드 5 친구들, 에피소드 26 롤러스케이트, 에피소드 35 심부름, 에피소드 38 난쟁이가 된 둘리2, 에피소드 68 해저왕국, 그리고 최종화) 그 반대는 없다.


3. 그리고 둘리와 도우너의 초능력이 부각된 것은 초중반 뿐이며 그때도 고길동 씨와의 싸움에서 직접 초능력을 이용한 적은 드문데다 나중엔 잘 나오지도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기본적으로 작품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의견이 달라진 것 같다. 둘리 일당이 고길동과의 싸움에서 직접 초능력을 사용한 예는 전체 에피소드에서 매우 낮은 비율로 등장하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빈도가 아니라 강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총기를 가지고 있음을 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남들은 위협을 느낄 것이다. 꼭 그 사람이 언제나 나를 향해 발포하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둘리와 도우너의 초능력은 이 비유에서의 총기와 같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에피소드 13 「슬픈 길동이」편에서, 고길동은 초반부에 둘리의 초능력에 걸려 TV 속에 갇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더욱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바로 둘리와 도우너가 초능력 대결을 펼치는데 휘말려 장독대, 현관의 계단과 대문이 파괴되었고 마지막에는 집 전체가 이글루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나중에 에피소드 47 「오랑우탄 수송작전1」에서 고길동의 입을 통해 "우리집 기둥을 뿌리째 파 먹으려고 들"었던 일로 묘사된 바 있다. (http://shaw.egloos.com/1948315)

또한 에피소드 32 「도우너의 생일」에서는 작은 고길동 모습을 한 요정(둘리의 주장)들이 무수히 출현했다. 이 때 고길동은 공포에 질렸던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해석해도 대과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리는 이 사건과 자신의 관련성을 일단 부인했으나 그 발단 부분에서 분명 초능력을 사용했고, 또 그 진술이 거짓말이 아님을 입증할 아무런 증거도 없다. 무엇보다 고길동 본인이 이를 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요정' 들이 모두 사라지자 둘리를 물어뜯었다.) 비록 최면술에 걸린 상태이기는 했으나 에피소드 84 「민들레 꽃씨 요정1」 에서 고길동은 그 때의 사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또 둘리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런 일들이 비록 작중에서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리나 도우너가 가진 능력이 준 충격을 고길동이 '망각'했다고 볼수는 없다. 연재 후기로 가면 둘리는 초기만큼 초능력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극말기의 에피소드, 예컨대 「식사전쟁」에서도 여하히 둘리의 초능력으로 볼 수 밖에 없는 현상들을 목격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고길동의 일상을 충분히 위협할 만큼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둘리의 초능력 사용이 줄어든 것을 장기 연재된 만화에서 종종 보이는 설정 리셋 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당연히 둘리가 평소에 늘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위협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고길동이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리셋되지 않았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4. 더구나 고길동 씨가 둘리 일당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전력면으로 '두렵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을뿐더러, 그동안 고길동 씨가 놈들의 말썽에 참다참다 물리적 제재를 가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라는걸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둘리』에서는 등장 인물이 생각하는 바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길동이 둘리 일당에 대한 두려움이나, 숫적으로 자신이 불리하다는 자각을 내비친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고길동은 둘리 일당과 진정한 전면전이 벌어지면 자신이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고길동이 둘리 일당을 정말로 쫓아내기 위해 시도한 구제책들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가 구사한 방법은 다양했지만, 남의 손을 빌려 해결하려 한 에피소드가 10개가 출현하며(위 링크 3 참조) 각개격파를 시도한 예도 수차례 등장한다. 이는 사실상 둘리 일당을 배제하는 과업을 고길동 혼자 힘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움을 자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둘리』의 전체 에피소드가 120여개임을 감안할 때 그러한 암시가 10여차례나 출현한다는 것은 결코 사소하게 지나가는, 있으나 마나한 점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필자가 링크 (1)에서 언급했다시피, 많은 경우에 고길동은 둘리 일당에게 벌을 주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등, 완력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런 표면적인 상황은 등장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심리가 만들어 낸 현상이고, 진정한 힘의 우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후반부 에피소드인 「위자료를 다오」에서는 둘리와 고길동 사이에 분위기상으로도 대단히 심각한 싸움이 발생하는데, 결국 경찰이 출동하여 최루탄을 쏘아 진압할 때 까지도 결착을 보지 못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분쟁보다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고길동 혼자서 둘리 일당을 제압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5. 게다가 나중에는 초능력에 아무렇지 않게 대응한다. 도우너가 깐따삐~~~~~~ 초능력을 쓰려고 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미리 준비한 몽둥이에 매단 글로브로 얼굴을 강타하여 초능력을 못 쓰게 만들며 패줬다.

->이는 그때 그때 다르다고 말 할수 밖에 없다. 우선 이 경우에도 엔하위키 글의 원 작성자분이 정확히 무슨 에피소드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필자가 기억하기에 제일 그것과 비슷한 사례는 에피소드 96「서러운 도우너」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 패배 이후 도우너는 투견 훈련을 받아 파워업 하여 돌아오며, 고길동이 글러브를 매단 몽둥이를 다시 꺼내지만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싸움이 더 계속되었을 때 고길동이 자력으로 승리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이 단계 이후에 도우너가 끝내 고길동을 이기지 못한 것은, 작품 내에서 일종의 트릭스터 역할을 하는 희동이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즉, 이 사례는 어떤 경우에는 고길동이 도우너의 초능력에 잘 대응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런 우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으며 상황이 유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 역시 같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 「서러운 도우너」보다 나중인 4부 에피소드들 가운데 「둘리 추방 연구회」, 「식사전쟁」, 「방생」,「바캉스」에서 고길동은 둘리의 초능력을 무력화시키지 못했으며, 「쌍문동 랩퍼」에서는 오히려 둘리가 흡사 고길동이 「서러운 도우너」에서 보여준 것 같은 현란한 동작을 선보이며 고길동의 빨레판 공격을 피했다.

또한, 초능력 사용이 비교적 빈번했던 초반부 에피소드에서도 도우너는 이미 고길동에게 구타당하고, 패배를 맛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에피소드 16「착한 도우너」에서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기까지 했다. 따라서 고길동이 특별히 후반부에 초능력에 적응했다거나, 해법을 알아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6. 거기다 위에 언급했듯이 고길동 씨는 한번 틀리다고 생각하면 그게 강하든 뭐든 간에 냅두는 성격이 아니다. 저 수많은 염라국 정규군과 그외 무서운 얼음성 해적왕 바요킹을 보고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싸움을 걸었겠는가?

-> 고길동이 정말 그런 성격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그는 또치의 원래 주인인, '싸움 잘 하게 생긴' 서커스단원에게 손해 배상 받는 것을 포기했으며, 삼불이가 하숙을 들어오는 것도 (필시 체면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다. 둘리 일당이 주먹 세계 인물과 손을 잡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사실 그것은 둘리의 거짓말에 속은 것 뿐이었다) 삼불이에게 문제를 떠넘기기도 했다. 고길동이 히어로형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별히 한번 마음먹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할 정도로 집념이 강한지도 의문이다. 『둘리』에서는 고길동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극히 일부만 잘라서 보여주며, 독자가 거의 유일하게 감지할 수 있는 고길동의 집념은 그가 아주 일관되게 둘리 일당을 싫어하고, 쫓아내고 싶어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관계에 있어서 필자와는 관측이 다른 부분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에피소드 60 「저승 행차」에서 고길동은 처음에는 자신이 염라국에 왔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염라대왕 이하 저승 관계자들을 사이비 종교 교주와 그 신도들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염라대왕에게 싸움을 걸었을 때는, 역졸들이 모두 둘리 일당을 잡으러 간 참이라 염라대왕과 부하 한 명 정도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즉, 최소한 이 시점에서 고길동은 상황을 상당히 만만하게 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후에 싸움이 커진 것은 역졸들이 돌아왔기 때문으로, 고길동의 자의가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항복하지 않은 그 용기는 높이 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되어 자신이 염라대왕과 싸웠다는 것을 깨닫자, 고길동은 겁에 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7. 또한 구TV판 1화에서는 둘리를 냅두고 도망갈 때 그 넓은 하천을 슈퍼맨수준의 점프로 단번에 건넜을 정도의 신체능력을 보여주기도 하니 결국 고길동이 '약자'라서 둘리 일당 눈치를 살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부족한 것이다.

-> 『둘리』의 등장 인물 묘사는 대개 명랑만화적인 과장의 결과물들이다. 고길동이 먼 거리를 건너뛰었다고 해서 그가 슈퍼맨 급의 신체 능력을 가졌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정 비교를 하려면, 작품 안의 다른 등장 인물들과 비교해야 한다. 인간 캐릭터는 아니지만, 첫번째 에피소드 「둘리의 탄생」에서는 둘리가 들어있는 빙산을 만난 배가 점프를 하여 이를 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배가 빙산 높이 수준으로 점프하는 기능을 갖춘, 엄청난 초과학적 기술로 만들어진 함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화 작품 내에서 과장되게 묘사된 캐릭터들의 '강인함' 은 고길동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둘리 일당은 광화문의 고층 빌딩에서 추락했는데도 멀쩡했고, 여객기에 매달려 날아가다가 바위에 충돌했는데도 별로 다치지 않았다. 우주 공간에서 아무 생명 유지 장치 없이도 정상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이는 또치, 마이콜과 희동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둘리와 도우너의 초능력의 적용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도 일단 가능하다.) 고길동의 신체 능력이 슈퍼맨 수준이라고 말한다면, 공평하게 둘리 일당 역시 그에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이 논거는 고길동 대인배설을 뒷받침 할 수 없고, 힘의 우열면에서 고길동이 둘리 일당보다 앞섰다고 보아야 할 근거도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상 '고길동 약자설'(*가칭)에 대한 엔하위키의 반박에 대하여 재반박을 시도해 보았다. 마무리 하기 전에 두가지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약자' 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다소 근본적인 문제이다.

고길동이 과연 '약자' 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초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과연 모든 면에서 약자이기만 한가? 둘리가 고길동을 '봐 주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면대결이 벌어질 경우 정말 누가 이길지는 둘리 자신도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둘리는 삼불이와 고길동이 힘을 합치면 자신들은 결국 쫓겨 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절망했던 적이 있다. 또한 둘리 일당은 어리다. 유창하게 회화하기는 하지만, 사회에 대한 이해도나 적용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둘리가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고길동을 세뇌하여 노예로 삼고, 초능력으로 돈을 만들어내서 풍족하게 살 수도 있잖아?" 같은 질문은,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둘리가 그런 발상을 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 부터가 애초에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초능력이 없다는 것, 숫적으로 밀린다는 점에서는 고길동은 약한 입장이지만, 경제적인 면, 심리적인 면, '어른의 지혜' 같은 것들에 있어서는 반대로 분명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길동 대인배설은 결국 『둘리』라는 작품이 성립되게 만드는 동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하겠다. 즉, 둘리가 고길동씨의 집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둘리가 고길동의 집에서 쫓겨 나게 되면, 십중팔구 만화가 거기에서 끝나 버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길동은 둘리를 '쫓아내지 않는' 다. 하지만 그것은 작품 외적인 사정이며, 작품 내의 논리성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종류의 만화에서는 파고들어 해석하려고 시도하면 어디선가는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길동 대인배설이나 츤데레설은, 작품의 내적 논리성을 성립케 하기 위해 그런 부분들을 고길동의 특이한 성격으로 귀인시키는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것도 만화의 문법에서는 가능한 해석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작중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성격을 굳이 가정하지 않아도 만화 내에서 대사나 관습적인 표현을 통해 밝혀진 사항들만을 가지고 '동인' 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정도가 바로 필자가 '자연스럽다', '타당하다' 라는 등의 말로 표현하는 논변들의 정체다. 어차피 창작물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이므로, 독자들은 이 두가지 가운데서건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시면 된다. 

이 글의 정말 끝으로, 누구신지 모르지만 첫부분에 소개한 엔하위키 글을 작성하신 분께 『둘리』와 고길동에 관한 글을 써 주셔서, 읽는 동안,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으며, 그렇기에 감사를 올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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