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蘇秦)가라사대, "연(燕)의 동쪽은 조선 요동이다"? 반테러 동양사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易水.<戰國策>,燕策1
(연의 동쪽에는 조선 요동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와 누번이 있으며 서쪽에는 운중과 구원이 있고 남쪽에는 호타와 역수가 있습니다.<전국책>, 연책1>)

이것은 합종책으로 유명한 전국시대의 유명한 변설가 소진이 연(燕)나라 문공(文公, 재위 BC362-BC333)에게 한 말의 일부이다. <사기(史記)> 소진 열전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바로 이 구절을, 고조선이 요서(遼西)에 있었다는 증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연의 동쪽에 조선, 요동이 있다고 했으므로 연나라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먼저 조선이 나온 뒤에 요동이 나온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조선이 요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진이 정말로 연의 중심으로부터 가까운 것을 먼저, 먼 것을 나중에 얘기했을지는 의문이다. 임호(林胡, 내몽고 호화호특)와 누번(樓煩, 산서성 영무현)은 연의 북쪽에 있는 지방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임호누번" 이라 연칭되어 위와 같은 시각으로 보면 임호가 누번보다 상대적으로 남쪽에 있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임호가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한편 구원(九原, 내몽고 포두)은 운중(雲中, 내몽고 호화호특과 탁극탁 사이)보다 서쪽이라서 "운중구원" 이라 한 것이 가까운 데서 먼 순서로 부른 것이 맞다. 그러나 호타수(呼沱水)는 또 역수(易水)보다 남쪽으로, "호타역수" 는 먼 곳-가까운 곳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처럼 소진이 뚜렷한 배열 기준을 가지고 지명을 연칭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조선을 먼저 말하고 요동을 그 다음에 말 했다고 해서 요동이 조선보다 동쪽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전국시대 초기에 조선이 어느 지방을 점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염철론(鹽鐵論)>의 다음 기사보다 더 극적인 묘사는 없다.

燕襲走東胡辟地千里度遼東而攻朝鮮 <鹽鐵論>伐功
(연나라는 동호를 쳐서 천리 땅을 얻었으며 요동을 넘어 조선을 공격했다. <염철론>, 벌공편)

이 말은 염철논쟁 당시 어사대부였던 상홍양(桑弘羊)이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연나라가 고조선을 공략한 것은 소왕(昭王, 재위 BC312-BC279)때 일로 생각되는데, 위 구절대로라면 이 때는 연나라로부터 요동을 넘어가야만 조선이 있었던 모양이다. 혹은 염철론에 드러나는 인식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전한(前漢)때의 관념일지 모르므로(즉, 전한 사람들이 보기에 조선은 분명히 요동군 너머의 낙랑(樂浪)지역에 존재하였으으니까) 전국시대 조선의 위치를 확증하는 자료는 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논한다 해도, 그 자체가 조선이 BC 4세기에는 요서에 존재했음을 방증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인 것도 아니다.", "~라고 하기도 어렵다." 는 식으로 일관한 논의의 결론은 이거다.

오바질 할 거 없다.


고조선이 어디에 존재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연(燕)의 세력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생각해야지, 소진이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며 풀어놓은 썰을 보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앞서 부른 지명이 더 가까이 있다고 볼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선이 가깝고 요동이 멀다" 고 해석하다니, 반증되는 가설은 다른 가설을 입증하는 근거로 동원 될 수 없는 법이다.




*고조선의 재(在)요서설이라고 하면 험독=왕험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나, <한서(漢書)>에 대한 응소(應劭)주에서는 험독을 조선왕 만(滿, 즉 위만)의 수도라고 하였지 연에 의해 공함되기 이전의 도읍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며, 후대의 다른 주석들은 험독이 왕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응소주의 오류가 연이 요동에 진출하기 전과 후의 사정을 혼동한 탓에 빚어진 것이라는 식의 논변은, 가능은 할 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참고문헌

"단군과 고조선사", 노태돈, 사계절, 2000
"유향의 전국책", 신동준 역주, 인간사랑, 2004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송호정, 푸른역사, 2004



덧글

  • 緣  2007/04/26 22:02 # 답글

    흥미롭게 보고 갑니다. ㅎ
    앞으로 자주 들려서 봐도 되죠? ㅎ
    아! 링크하고 갑니당 ㅎ
  • 건새 2007/04/26 23:02 # 삭제 답글

    천하 어지럽긴
    그때도 매한가지라
    마제 치우천왕의 등장이 이러하니,
    그아래 단색의 평화가 찾아온 연후 인간이 그무어라 떠들든....
    글쎄올시다? 랄까.
    애초에 사방 자기집밖에 모르고 다리 건너 물을 넘어 본 적 없이
    떠드는 어리석은 것들이야, 그런 걸로 무얼 알겠다는 건다.
    신비의 비석 석수금야를 따라 접촉할 진져,
    그안에 담긴 진실된 비문을 깨우치면
    저절로 이, 그, 저, 세계를 알게 될 것이다.
    이미 펴정된 세계를 주인없는 땅에 깃대 꽂은 것들.
    그가 돌에 남았던들
    모를 것 같으냐! 진실된 역사의 추종자들은 그 것(그)에게서 정신 치환을 당한다.

    卍海
  • Shaw 2007/04/26 23:42 # 답글

    緣님/ 반갑습니다.
  • leinon 2007/04/27 00:02 # 답글

    멋지군요!
  • Shaw 2007/04/28 14:44 # 답글

    leinon님/ 감사합니다.

    건새/ 그대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수상해졌군.
  • 건새 2007/05/04 05:02 # 삭제 답글

    인간의 변신은 독기 어린 마음에서 오는 법.
    아직 놀라긴 이르다.

    손오공만 해도 슈퍼사이어인 4가 되었고,
    그 베지터도 오공과 퓨전이라는 꼴 사나운 짓을 하지 않았는가?!
  • 緣  2007/05/07 23:23 # 답글

    shaw님 이것들 다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이라는 카페에서 본것들인데..
  • Shaw 2007/05/08 01:28 # 답글

    緣님/ 엇, 그래요? 아마 그 사람들과 제가 참고한 도서가 같은 모양입니다.
  • Barbarossa 2007/05/14 12:55 # 답글

    shaw님 블로그 만드신것 진작 알았는데, 이제야 인사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릴께요. 네이버 지식인에 쓰셨던 글타래들도 여기 모아 놓으면 좋을 것 같네요. ^^
  • Shaw 2007/05/14 23:23 # 답글

    Barbarossa님/ 안녕하세요. 네이버에서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도 번창하시길. ^^
  • 孤藍眞明行 2007/05/21 15:09 # 답글

    진명행입니다. 썸바님. 소진열전에 나온 해당 문장을 설명할 길이 없어 답답했는데 아주 명쾌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燕襲走東胡辟地千里度遼東而攻朝鮮 . 이 문장을 제가 왜 망각했던 가요. 시원한 논리 잘 듣고 갑니다.
  • Shaw 2007/05/22 12:11 # 답글

    孤藍眞明行님/ 감사합니다. ^^ 저야 전문가분들의 논의를 그냥 취합하는 정도입니다.
  • 슈타인호프 2007/06/26 18:14 # 답글

    초록불님 이글루에서 이번 D씨 건으로 왔다가 여럿 구경하고 있습니다. 최신 글이 아니라 한참 전 글에 링크 신고 글 다는 것도 좀 쌩뚱맞지만, 그 글에 붙은 리플들이 워낙 위대한 작품(...)인지라 거기 덧대기가 겁나는군요^^;;

    덧 : 여기서 나온 논리대로라면, 제가 지금

    "동해 건너 미국과 일본이 있다"

    고 기록해서 그게 후세에 남는다면 일본이 태평양 저 너머 대서야으로 갈 수도 있겠군요.
  • Shaw 2007/06/26 19:53 # 답글

    슈타인호프님/ 예... "두 나라가 인접해 있다는 증거는 바로 대동아전쟁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태평양이 있는데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허구다. 무엇보다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했다는 것은 주요 전역의 발생지가 동아, 즉 동아시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말이 나올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 칸피셸헤 2019/04/04 10:16 # 답글

    염철론 주진편에 패수(沛水)를 건너 조선을 멸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대요수(대요하)~패수(어니하) 이 사이가 요동이 아니겠는지요? 거기서 부터 위략의 만번한(한서지리지의 문현, 번한현-개주시, 해성시)까지가 사기 조선열전의 요동외요고 한나라가 들어선 후에 패수를 넘어선 문현과 번한현이 있는 곳 까지는 지키기가 어려워서 사기 조선열전의 설명 대로 대요수 부터 패수 까지의 요수의 이동이자 패수 이서인 요동 내의 요동고새만 수리를 한 것 같네요.

    그런데 만번한 이서부터 연장(燕將) 진개에게 상실을 한 위략의 이천리 까지는 도저히 고조선이 가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북경이나 천진까지 다다르고 있어서 이를 조금 수정을 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사기 흉노열전에서 진개가 동호로 부터 얻은 천리를 빼면 나머지가 천리 정도가 되죠. 공교롭게도 십이대영자 문화의 서계(西界)인 릉원시와 중심지인 조양시를 거쳐 개주시와 해성시의 배후인 천산산맥의 분수령 까지가 대략 그 정도가 되는데 이것이 진개에게 상실을 한 고조선의 영토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는 대릉하 유역까지 강역을 뻗치고 있었고 요서에도 영토가 있었다는 것이 되지를 않겠는지요?

    참고로 십이대영자 문화를 고조선의 것으로 파악을 하는 견해가 학계에서도 힘을 얻고 있는 듯 합니다만.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dn.d_0057_0040

    동북아역사지도도 이와 대동소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 한데 다만 패수를 어니 (淤泥) 가 아니라 대요(大遼)~혼하(渾河) 그 자체라고 본 것 같네요.

    http://nsimg.kbs.co.kr/data/news/2016/06/29/3303696_2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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