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부흥] 의 매식자 두령 가운데 한 분인 석(jws881111)님께서 알아본다고 하셨던 문제인데, 불행히도 이 후에 글이 삭제되어 余는 그 되돌릴 길을 모르고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도 모르므로 비루한 재주로나마 직접 살펴본다.
<<만주원류고>> 에 요서경략설의 증거가 나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고하거니와, 원래 이 문제의 근원은 단재의 <<조선상고사>> 이다. <<조선상고사>> 제 7편 2장 4절에서 단재는 설파하기를, 다음과 같았다.
조선 역대 이래로 바다를 건너 영토를 둔 자는, 오직 백제의 근구수왕과 동성대왕의 양대(兩代)이다.
(...중략...)
<만주원류고>에 "금주(錦州), 의주(義州), 애혼(愛琿) 등 지(地)가 다 백제" 라 함이 이를 가리킨 것이요, (후략...)
훗날 많은 연어와 송어들이 이 구절을 그대로 ctrl+c, v 하였으나, 정작 <<만주원류고>>를 직접 찾아본 이는 없었다. 단재가 보았던 구절은 필시 이것이리라.
謹按百濟自後漢時已見史傳歷晉迄唐使命歲通王本夫餘王仇台之後以夫餘為氏舊國屬馬韓晉代以後盡得馬韓故地兼有遼西晉平二郡自置百濟郡宋書言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都城號居拔城則百濟郡即晉平而居拔城即晉平城也馬端臨謂晉平在唐柳城北平之間實今錦州寧逺廣寧之境一統志謂居拔城在今朝鮮境內者殆梁天監時遷居南韓之城歟
그러니까 이것은 단재가 <<만주원류고>>를 독파하여 새롭게 발견해 낸 사료가 아니라, 바로 <<송서(宋書)>> 등을 보고서 만주원류고의 편찬자들이 "우리 생각에는 이런 것 같네..." 라면서 덧붙인 부분으로, 결국 요서진평이 존재했다는 근거는 <<송서>>나 <<양서>>에서 나오고 그 위치가 "금주, 영원, 광녕" 등지라는 것은 <<통전>>의 "柳城北平之間" 에서 나온 것이다.
즉, 요서경략설의 증거로 <<송서>> 나 <<양서>>, <<통전>> 등을 이미 꼽아놓고서 만주원류고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의미가 없다. 굳이 의미를 찾으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만주원류고를 실제로는 보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나저나 역시 청나라의 대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매국식민사학자들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분들이신지라, 이 분들은 송서에 나오는 "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 을 "백제의 수도는 진평군 진평현이다." (ㅡㅡ;;;;;) 라고 읽으셨으며, 그 결과 "거발성=진평현" 이라고 철썩같이 믿으셨다. 그러다가 <<일통지(一通志)>> 에서 거발성이 조선 경내에 있다고 한 것을 보고 이분들은 패닉상태에 빠지셨으나, 이내 침착을 되찾으시고 양서에서 "尋為高句驪所破衰弱者累年遷居南韓地"이라는 구절을 찾아내셔서는 "원래 요서에 있다가 조선 남쪽으로 옮겼는갑다..." 라고 생각하셨다.
채호형... ㅜㅜ
덧글
... 그리고 모용씨에 의해 이치된 낙랑군이라고 하시니 갑자기 위서 태조기(맞나? 진서 모용황 재기였나?)에 나오는 백제 고려 잡이 등등등이 업에 있다는 것과 연결이 되네요. 잡혀간 백제인이 이치되면서 업에 끌려갔다능.. 뭐 그런 식? 뭐.. 그렇게 연상한 저도 황당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뻘 생각인거겠죠?
이는 윤용구의 「中國 출토의 한국고대 유민 자료 몇가지」, 『한국고대사연구』2003, pp303~306에서 자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직 백제의 근구수왕과 동성대왕의 양대(兩代)이다."
뒤의 글자를 검색어로 넣어 보면..뜹니다. 그래서, 서로 맞출 수가 있습니다. 시간이 걸려서 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