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식민강단 두령의 한분인 석님이 제기하셨던 문제이다. 그 후에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이 묘연하므로 여기에 말린 쑥같은 글이나마 적어두는 것이다.
<<문헌비고>> 에 백제의 대륙(....)영토 소유의 증거가 나와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나 상고하건대, 이 또한 단재가 <<조선상고사>> 에서 살포한 떡밥이다. 대체로 앞서 이야기한 <<만주원류고>> 의 떡밥과 이 <<문헌비고>>의 떡밥은 붙어 다니는데, 그것은 이미 저 <<조선상고사>> 의 7편 2장 4절에서 두 이야기가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조선 역대 이래로 바다를 건너 영토를 둔 자는, 오직 백제의 근구수왕과 동성대왕의 양대(兩代)이다.
동성대왕때는 근구수 때보다 더욱 광대하였던 고로, <구당서> 백제전에 백제 지리를 기하여 가로되, "西渡海 至越州 北渡海 至高麗 南渡海 至倭" 라고 한 바, "월주" 는 금(今) 회계(會稽)니, 회계 부근이 모두 백제의 소유이었나니, <문헌비고> 에 "월왕 구천의 고도를 환(環)한 수천리가 다 백제지(百濟地)라 함이 이를 가리킨 것이요, "고려" 는 당인이 고구려를 칭한 명사니, 고구려의 국경인 요수 이서(以西)-금(今) 봉천 서부가 다 백제의 소유이었나니.
그러나 정작 그 <<문헌비고>> 에는....

越州 越王句踐所都 會稽山陰之地 唐時爲 越州
......무려 주석(註釋)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臣謹按-(신(臣)이 삼가 살피건대...) 하고 시작하는 대목에서 신경준이 요서, 월주 경략의 사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한 근거는 다름아닌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최치원 발언이다. (아앍 채호님!!!)
이제 보시다시피, <<문헌비고>> 에는 백제의 해외 영토 보유를 입증하는 독립적인 사료같은 것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신비의 사료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재의 인용도 잘못되었다. 단재는 이런 종류의 기록을 인용할때 원체 그다지 정밀하지 못하다. 그것은 <<조선상고사>> 를 사서(史書)의 원문과 대조해서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점일 것이다.
<<문헌비고>> 에서 월왕 구천의.... 라고 운을 떼며 그것이 백제의 해외 영토 보유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지금 ctrl+c, v 를 하고 있음을 뜻할 따름이다.
****보이지 않는것을 잘도 보는 민족 꿈나무들의 싱그러운 모습.

덧글
...크크 ^^
파파울프님/ 어허 현재 역갤 최고의 승리 전문가인 배달의후손조차 인정한 문헌비고를 비하하시다니!!
초록불님/ 헉... 이런 글이 인덱스에 들어가도 될지요. "그들" 은 "월왕 구천 얘기가 주석에 나오는게 어쨋다는 것이셈?" 이라고 할텐데요...
운다인시언님/ 어차피 재야사학이란게 다 저런 것들이라서요.
"고구려의 국경인 요수 이서(以西)-금(今) 봉천 서부가 다 백제의 소유이었나니."
생각해 볼 구절이군.
단재는 대단하군.
흑치상지나 광서자치구등의 유습등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최치원의 말은 '거짓'이다라고 결론내리면 되는 것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네요.
백제의 땅은 봉천 이서에 있었다는... 역시 문헌을 찾아서 읽어 봐야 하죠.
문헌비고라.. 이 구절을 깊이 있게 연구해 봐야겠군요.
채호형...ㅠㅠㅠㅠㅠㅠㅠㅠ
동성왕 무덤도 산둥반도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습ㄴ디다
그리고 강시단야라는 표현대로 백제를 침공한 북위의 군대가 대파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유목민족의 나라인 북위가 기병대를 함선에 승선시키고 그것도 수십만이나 군대를 보내
백제를 침공한다는 것이 흡사 열대 섬나라 사람들이 그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모피코트를 주로 입고 산다고
하는것과 비슷한(박지원과 박지만이 서로 친척이라는 우스게소리보다 더 웃긴)소리같습니다.
편한대로 그건 일고의 가치가없는 환빠의 헛소리 라는 저질멘트 말고 납득이 가게끔 누가 답변해주세요.
요서경략설을 증명할만한 유물이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 1차 사료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말입니다
그것도 금석문이라고 하더군요
난원경 묘지문인데(http://m.blog.daum.net/see1357/8350721) 요에서 달솔이라는 백제 벼슬을 지냈다는 말입니다
(高/曾)祖珇, 仕遼爲達率. 亦猶今宗正卿焉.
(고 또는 증)조인 난조(難珇)는 요(遼) 지역에서 벼슬하여 지위가 달솔(達率)에 이르렀다. 지금의 종정경(宗正卿)에 해당한다.
한국인 교수는 요를 한반도 내 지명으로 봤고, 중국인 교수는 요서경략 기록에 맞추어 요서로 보더군요.
북위와 백제의 전쟁은 한반도 내에서 일어난 것으로 믿고 백제가 바다 건너 북위를 침략했다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 보면 미친놈 취급했는데 한국인도 아닌 중국의 사회과학원 교수가 저런 주장을 하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_-
(https://mirror.enha.kr/wiki/%EB%82%9C%EB%A3%A8)
난원경 묘지명의 해석에 대해서도 포스팅 해 주실 수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