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 기초관찰<1> -재야사학자들의 이상한 자신감(3) 반테러 동양사


"대륙"의 지배자


 앞에서 살펴본 문정창과 안호상은 재야사학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문정창은 재야사학의 이론적 틀을 만들어 냈고, 안호상은 이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신문화에 이어붙이려고 시도했다.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고대 한국사의 영역은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와 중국 동부 일대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것은 기존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한국사의 영역에서 "국경선을 확대"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처음에 살펴보았던 거대한 고구려지도는 바로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부터 살펴볼 몇몇 재야사학자들은, 보편적인 상식은 물론이고 기존 재야사학의 입장과도 크게 궤를 달리하는 주장을 펼친 사람들이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한국사의 국가들은 중국내에 커다란 영토를 보유하고 지배한 것을 넘어, 아예 그 중심지 자체도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흔히 "대륙론" 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신라의 수도 경주는 사실 중국의 낙양이며, 고구려의 수도 평양은 다름아닌 장안(오늘날의 섬서성 서안(西安))이었다고 한다. 백제가 중국내에 거대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은 재야사학 주장의 핵심 중 하나인데, 기존의 재야사학에서는 이것을 백제의 중국내(內) "식민지"[1] 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백제의 본토는 어디까지나 한반도 서남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론에 의하면 중국내의 거대한 영토야말로 백제의 "본지(本地)" 인 것이다.  

 대륙론자 가운데에는 삼국까지만 중국 내에 있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려 왕조, 심지어는 근세 조선왕조까지도 모두 현 중국 영토 내에 커다랗게 자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의 상식에서 너무나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물론 상식이란 때로 사람을 속이기도 한다. 더구나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아는 역사란 모두 어떤 음모에 의해 조작된 것일테니 말이다. 저런 이야기를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우리의 상식과 역사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리 검증을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조선국의 대명사다"



 대표적인 대륙론자 이중재는 그의 저서 <<상고사의 새발견>>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제 사학에 의해 뿌리가 잘린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칼을 갈던 우리는 엄연한 기마민족의 후예일진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가 우리 땅이 아닌 중원에서 잠을 자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찌 좁은 지금의 한국땅만을 역사책에 올려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이제는 한문(漢文)이 어떠한 문자인지 역사의 실체를 캐면서 생각하자. 아직도 역사를 잘못 인식하고 지나치는 후손에게 선조는 눈을 부릅뜨고 있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역사를 바탕으로 민족정기를 세워 찬란히 빛나던 상고사의 문화를 우리 앞에 다시 숨쉬게 하자. 상고사의 모든 의문이 여기 속시원히 풀리고 있다.

<이중재, 상고사의 새발견, 동신출판사, 1996 표지 뒷면>



 어떤 사람은 이 글을 보고 이중재가 매우 애국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 어떤 사람은 이걸 보고,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영토야욕을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문제에 있어 같은 가치관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중재의 사상이 훌륭하냐, 그렇지 않으냐는 그의 학술적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설령 이중재가 온 세상을 뒤덮을 고매한 사상을 가졌다고 해도 충분한 물리학 지식이 없으면 양자역학 방정식을 풀 수 없을 것이다. 매우 간단한 문제이다. 


 이제 글에서 드러나는 그의 역사 인식과 연구 수준을 살펴보자. 다른 재야사학자들처럼 이중재도 자신만만하다. 그는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역사학계를 공격했다.  



 조선왕만(朝鮮王滿)은 동이(東夷) 사람인데도 어떤 사서는 흉노(匈奴)의 후예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기(史記) 115권 조선렬전 55에는  조선왕만을 흉노라고 몰아세웠다. 왕만(王滿)은 준왕(準王)으로서 고조선(古朝鮮)인 한(漢)나라를 건국한 사실은 전술한 바 있다. 조선왕만의 손자 우거(右渠)는 연(燕)나라를 물리치고 한사군(漢四郡) 즉 조선사군(朝鮮四郡)을 건설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한(漢)나라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나 사기사전(史記辭典)에도 조대명(朝代名) 즉 조선국 대명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학교수하는 사람들이 삼국사기 본기나 삼국유사도 읽지 못하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식민사학을 교육해온 것을 보면 기막힌 일이다.

<같은 책, p328>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가 거론한 "사기 115권 조선열전 55" 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朝鮮王滿者故燕人也(조선왕 만(滿)은 본디 연나라 사람이다.)



 사실 이중재는 이미 <<상고사의 새발견>> 279페이지에서 이 대목을 "조선왕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라고 한 번 해석해 놓았다. 그런데도 뒤에서 딴 소리를 하고 있다. 혹 자기 해석을 스스로 잊어버렸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더 놀라운건 이것이다. 


 조대명(朝代名) 즉 조선국 대명사



 이 말이 대체 왜 나왔을까? 이중재는 동서 262페이지에서 또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기에 요단군조선 하(夏) 은(殷) 주(周) 진(秦) 한(漢) 위(魏) 조(趙) 촉(蜀) 오(吳) 진(晉) 송(宋) 제(齊) 량(梁) 진(陳) 수(隋) 당(唐) 숙신(肅愼) 걸안(契丹) 요(遼) 금(金) 몽고(蒙古) 원(元) 명(明) 청(淸)도 모두 조대명(朝代名)이다. 조대명이란 조선(朝鮮) 나라의 대명사란 뜻이다. 이 모두의 나라들은 고조선(古朝鮮)이며 후예들이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 참고).


  

 사실 이쯤 되면 원래 조대명(朝代名)이라는게 무슨 말인지 몰랐던 사람이라 해도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다. 조대(朝代)라는건 바로 "왕조(王朝)" 라는 뜻이다. 따라서 "조대명" 이라는 것은 단순히 "왕조 이름" 이라는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중국어 항목 "朝代"[2]>



 즉, 이중재가 봤던 책에서는 하, 은, 주, 진, 한 등을 모두 "왕조 이름" 이라고 해설해 놓았던 것인데, 이걸 모르고 "조(朝)" 를 "조선국"으로, "대명(代名)" 을 "대명사" 라고 해석을 하고 있으니 수나라도 조선의 대명사, 당나라도 조선의 대명사라는 엄청나게 이상한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중재의 독특한 한문 해석을 조금 더 살펴보자. 




왕망대설


특히 후한서(後漢書) 2814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망대설(莽大說)" 갱명고구려왕(更名高句驪王)" "위하구려후(爲下句驪侯)" 라 하였다. 이 말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왕망의 큰 설에 의하면 이름을 고쳐 고구려 왕이라하고 아래 있는 구려는 제후국으로서 고구려를 위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책, p275>

 


이게 무슨 말일까? 후한서 동이전을 찾아보면, 원래 저 대목은 이런 얘기다.



王莽初發句驪兵以伐匈奴其人不欲行彊迫遣之皆亡出塞爲寇盜遼西大尹田譚追擊戰死莽令其將嚴尤擊之誘句驪侯入塞斬之傳首長安莽大說更名高句驪王爲下句驪侯於是貊人寇邊愈甚

(왕망(王莽) 초에 구려(句驪)의 군사를 징발하여서 흉노(匈奴)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그들이 가지 않으려 하여 강압적으로 보냈더니, 모두 국경 너머로 도망한 뒤 노략질하였다. 요서대윤(遼西大尹) 전담(田譚)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전사하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그는 구려후(句驪侯) 추(騶)를 꼬여 국경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장안(長安)에 보내었다. 왕망은 크게 기뻐하면서, 고구려왕(高句驪王)의 칭호를 고쳐서 하구려후(下句驪侯)라 부르게 하였다. 이에 맥(貊)인이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은 더욱 심하여졌다.)(해석은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을 따름) 



 즉, "莽大說" 이라는건 "망대설"이 아니라 "망대열" 로 읽고 "왕망은 크게 기뻐했다" 라고 새기도록 되어 있는 문구다. 공격 명령을 받은 장수가 귀환해서 이겼다고 보고했으니 기뻐했다는 의미이다. 說자에 여러가지 음과 뜻이 있다는 것은 중학교 수준의 한문에서 배우는 것이므로 길게 논할  것은 없겠다.[3] "왕망의 큰 설" 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도 알기 힘들다. 

 계속된 이하의 대목에서 이중재는 문법을 무시하고 문장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更 A~爲 B" 를, "A 를 고쳐서 B 로 하다" 로 해석하지 않고 "爲" 를 "위하여" 로 풀어버렸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대체 왕망이 "하구려후" 를 왜 위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보통은 처음에 길을 잘못들었다 해도 이정도면 자기 실수를 깨닫게 되는 법이지만 이중재는 어째서인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爲下句驪侯" 를 이렇게 해석했다. 


 爲     句驪  
 (1)  (2)  (3)   (4)
            
 (1) 위하다
 (2) 아래 있는
 (3) 구려
 (4) 제후국으로서   

이중재의 해석 순서: (2)->(3)->(4)->(1)->(3) 

해석결과: 아래 있는 구려는 제후국으로서 구려를 위하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어순이나 문법을 무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3)句驪" 를 한번 새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두번 새기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잘못된 해석이다. 이러한 이중 해석은 꼭 이중재가 아니더라도 재야사학으로부터 나온 한문 해석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해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서 나중까지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억지로 뜻을 만들어 내려다 보니 이미 한번 새겼던 문구를 전혀 다른 뜻으로 또 써먹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무식꾼이 아니다"



 이중재의 엉터리 한문 해석이 지탄받은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재야사학의 비판자들은 다소 흥미롭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가장 격렬한 비난을 퍼부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은 바로 우리가 지난번에 만났던 재야사학자 임승국이다.

 임승국은 91년에 월간 <자유> 지의 7월호에 개재한 글을 통해 이중재를 공격했다. <<상고사의 새발견>> 에서 이중재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묘예란 간단히 말해서 묘족의 뿌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학자라는 사람들이 필자를 무식꾼으로 매도하고 나섰다. 임승국씨는 자유라는 잡지에 1991년 7월호에 대대적으로 악필로서 필자를 모욕하고 나섰다. 그후 1991년 10월 28일 서울신문에도 국수주의(國粹主義)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묘족(苗族)은 후예(後裔)라는 뜻이지 묘족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1991년은 필자가 완전히 무식꾼이 돼 버렸다.

<같은 책, p309>



 한문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중재에게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 충격은 본인이 자초한 일일 뿐이다. 나중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오재성, 이중재 등 대륙론자들은 사서에 나오는 묘예(苗裔)라는 단어를 "묘족의 후예" 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이것을 자신들이 제기한 특이한 주장의 근거로 사용했는데, 위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실 "묘예" 는 다른게 아니라 먼 후예(後裔)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도 실려있는 낱말이다.

 이중재는 자기가 1991년에 무식꾼으로 매도당했다고 주장했다. 기실 "묘예" 같은 예스러운 단어를 몰랐다고 해서 무식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중재가 그 후에 대처한 방식에는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다. 이 한문 전문가는 자기가 절대 무식꾼이 아님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강변했다. 



무식한 사람이 "한民族史" 라는 엄청난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한자(漢字)로 된 원서(原書) 3,200권이 넘는 책을 일일히 하나하나 고증해 가면서 무식꾼이라면 쓸 수 있었을까...... 그것은 국민과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중략)... 사학자(史學者)가 되려면 적어도 만권(萬卷)의 서책을 읽어야만 행세할 수 있었다니 필자는 충분히 이해한다. 필자는 만권 이상의 원서로 된 사서를 갖고 있다. 원서(原書)는 본래 한책 두책 세책이라고 한다. 한책속에 몇권 있는가가 문제이다. 위서(魏書)의 경우는 114권이다.  ...(중략)... 이십오사(二十五史)만 하더라도 3749권이 들어있다. 

...(중략)...

묘예를 후예(後裔)라고 하는 사람들은 후예(後裔)라고 썼을 때만이 후예가 되는 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중략)... 그러나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상대하느니 공부만 하려했던 필자의 심정을 후세 사학도(史學徒)들이 이해하리라 믿는다.

<같은 책, p309~310>




 이중재의 이러한 변명에 가치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가 한문 해석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실제 해석 문제에 부딪쳤을 때 어찌 했는지만 보면 되는 일이지, 그의 집 책장에 책이 몇 권 꽂혀 있느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많은 책을 모으고 혼자 열심히 들여다 보고서도 제대로 해석을 못한다면 이는 헛되이 돈만 날린 일일 뿐이지, 이중재라는 사람이 쓴 글과 그 주장의 가치는 조금도 높여주지 않는다. 더구나 인용문 말미의 주장에 이른다면, 그야말로 뭐라 평을 하기도 괴로울 정도다. 굳이 후세 사학도를 찾지 않아도 이 글의 독자들께서 이해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네이버 중국어사전 항목 "묘예"[4]. http://orumi.egloos.com/3584766 에서 재인용>





**<<한民族史>> 라는 것은 이중재 자신이 1990년에 냈던 책 제목이다. 자기가 쓴 책을 스스로 "엄청난 책" 이라고 부르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필자는 사실 저런 것 보다는 이중재가 83년에 낸 "오성공론(五星公論) : 세계 최초로 연구된 초과학적 사주철학" 이라는 책에 훨씬 눈길이 간다는 점을 겸허히 자인한다.   






                                                               -계속-








References&Supplements



[1]문정창, "백제사", 1975, 柏文堂 을 참조.

[2]http://zh.wikipedia.org/wiki/%E6%9C%9D%E4%BB%A3

[3]更도 "고치다" 라고 새기려면 "경" 으로 읽는 것이 맞다.

[4]
http://cndic.naver.com/cndic.nhn?mode=ckword&docid=78348









덧글

  • 지나가다 2008/03/17 04:19 # 삭제 답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한서 동이전 인용문 아래 莽大設은 莽大說 아닌지요...
  • 2008/03/17 06: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耿君 2008/03/17 09:01 # 답글

    역시 열전식의 전개는 재미있습니다! 근데 한숨이 나오네요 -_-
  • 야스페르츠 2008/03/17 09:22 # 답글

    아아.. 이중재... 제가 직접 만나보았던 사람입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이 이 사람의 광팬이었답니다... 그때 직접 받았던 친필 사인 책자는 지금도 집에서 냄비밭침으로 사용 중이죠....

    그때 그 국어선생은 아직도 이 작자를 따라다니고 있을까요...
  • 푸른화염 2008/03/17 11:06 # 답글

    실고를 금치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의 독법은 정말 재미롭군요.....(OTL....)
  • 아롱쿠스 2008/03/17 11:12 # 답글

    국영방송(?)에서는 무려 이사람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방송해줬다는...

    (김경응씨가 그 주인공)
  • Shaw 2008/03/17 11:47 # 답글

    지나가다님/ 아, 오타입니다. 묘한것이 하나 있네요. ^^;;;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밀글님/ 대략 유사한듯 합니다.

    耿君님/ 이 사람이 하는 모든 말들이 이런 식이라서. ㅡㅡ;;

    야스페르츠님/ 그건... 무섭군요. 이중재는 다소 교주끼가 있는 인물입니다.

    푸른화염님/ 현재 제왕적 독법을 가장 능란하게 구사하는 이가 바로 이중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롱쿠스님/ 예. 그쯤되면 막가자는 거겠지요.
  • 초록불 2008/03/17 13:57 # 답글

    오호, 야스페르츠님이 냄비받침으로 사용한다니 흥미가 당깁니다. 재야사가들의 책을 한권두권 모으고 있는 중이라서요.
  • 초록불 2008/03/17 13:57 # 답글

    이중재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행한 일대기를 보고 경악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군요.
  • 야스페르츠 2008/03/17 16:52 # 답글

    초록불 님// 원하신다면 보내드릴 용의도 있어요. 쓸데없이 두껍기만해서 냄비받침으로도 별로거든요. 제목은 <고대 조선과 일본의 역사>랍니다.
  • Shaw 2008/03/17 23:17 # 답글

    초록불님/ 이중재의 일대기도 액세스 할 수 있습니까? 정체가 무엇일지 참 궁금합니다. 저는 그가 쓴 수상한 사주팔자책 밖에 보지 못해서. ㅡㅡ;;
  • 초록불 2008/03/19 15:35 # 답글

    아롱쿠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국영방송에서 일대기를 방영한 바 있습니다. 보고 시껍했는데, 아마 지금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인생이다]든가 뭐 그런 제목의 휴먼 다큐 중 한 편이었습니다. KBS에 한번 가보고 말씀드리죠.
  • Shaw 2008/03/19 18:48 # 답글

    초록불님/ 방영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습니다. "뭐 그딴 방송을..." 이라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놀라운 내용이었나보군요. 꼭 찾아봐야되겠습니다.
  • 아롱쿠스 2008/03/19 19:21 # 답글

    Show님, 그거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아직 없애진 않았군요.

    http://www.kbs.co.kr/1tv/sisa/thislife/vod/vod,1,list,8.html

    128 20031104 책속에서 찾은 희망

    '방송보기'에서 8번째 목록에 있네요.
  • Shaw 2008/03/19 19:28 # 답글

    아롱쿠스님/ ^^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8/03/20 01:14 # 답글

    뭐 잘 아시겠지만, 그 방송 자체가 이중재의 제왕학적 독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서 보세요...^^;;
  • gentleman 2010/02/01 17:22 # 삭제 답글

    2009년 8~9월 kbs 역사스페셜에서 요하문명이 중국 황하문명 보다 몇천년 앞선것이 사실로 밝혀져진거 이중재선생의 선경지명이 확인된 거 보았나요 ?
    여러분들은 열등감의 덩어리라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 ㄲㄲㄲ 2010/02/02 17:47 # 삭제

    낄낄낄. 역사스페셜 내용을 사실로 믿는 똘추가 요기잉넹?
  • 소하 2011/09/02 23:20 # 답글

    "망대설"의 해석에 관련된 부분에서 크게 웃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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