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의 아욱토리타스 달려라 공화국


기원전 27년에 공화정 복귀선언 연설을 한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많은 명예를 받았으며, 기왕에 누리고 있던 권력 몇가지를 확인받았다. 그는 훗날 제작한 업적록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그 후 나는 모든 사람들을 아욱토리타스(Auctoritas)에 있어 능가했다. 그러나 포테스타스(Potestas)에 있어서는 내 동료 행정관들을 능가하지 않았다." 고 술회했다.

유명한 『로마인 이야기』에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아욱토리타스'를 권위, '포테스타스'를 권력으로 번역하고, 아우구스투스의 저 말은 진실이 아니라고 평했다. "쓴웃음을 짓지 않고는 읽을 수 없을 것" 이라고도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다른 행정관에 비해 권력을 많이 갖지 않았다는 말은 틀림없이 거짓이다. 하지만 저 말은 아우구스투스의 기만적인 선전이라고 웃어넘길수만은 없다. 아욱토리타스를 '권위' 라고 간단히 번역한다 해도, 거물정치인의 권위라는 것이 단순히 명예나 존경받는 경력만으로 끝나는 법은 없다. 그것은 필시 현실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권위가 된다. 


로마의 지배계급들은 아욱토리타스를 매우 중시했다. 어쩌면 그들의 삶의 목표 자체가, 거대한 아욱토리타스를 얻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조들의 명성, 위엄있는 행동거지, '로마인다운' 풍격, 행정관으로서 쌓아올린 위대한 공적, 그리고 수많은 클리엔테스, 엄청난 부유함,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종국에는 아욱토리타스를 형성했다. 그 중에는 충분히 현실적인 요건도 있었으나(이를테면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내려주는 은사나 후원) 다소간은 관념적인 요건(가문같은 것)도 있었다. 로마인들의 아욱토리타스는 말 뿐인 권위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 언제든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아욱토리타스에는 구속력이 있었다. 비록 법적인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구속력이 발생했다. 이를테면 원로원도 원래는 의결 기관이 아니라 행정관들에게 자문을 주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그 자문에는 아욱토리타스가 깃들어 있었으므로 결코 무시될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권력이라 보는 것들 가운데 일부는 금전이나 인맥 등, 분명히 법이 설정한 한계 밖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초법적 권력이라 부르고 경계하며, 선망하지만 경멸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대 로마인들은 그것에 아욱토리타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쟁쟁한 거물 정객들이 아욱토리타스를 확대할 생각에 경쟁적으로 엄청난 일을 벌였고,  이는 결국 공화정 파탄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제 다시 아우구스투스의 말을 보면, 그것이 비록 진실은 아니지만 그다지 겸손한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아욱토리타스가 누구보다도 대단했다는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그 명문가의 가부장이었으며 시칠리아에서, 일리리아와 판노니아에서, 그리스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이집트의 정복자이자 로마인에게 질서를 되찾아준 영웅이었다.(사실은, 그 이전에 질서를 파괴한 것도 그 자신이었지만) 그는 제국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며 대서양에서 이집트까지 이르는 땅에 그의 은혜를 입은 수많은 클리엔테스가 살고 있었다. 상당수의 원로원 의원들도 아우구스투스의 온정에 기대고 있었다. 민중은 그에게서 빵과 서커스를 제공받았으며, 호라티우스나 베르길리우스 같은 자들은 그를 열렬히 찬미하는 장엄한 시를 지었다.

이런 엄청난 아욱토리타스가 한명에게 집중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는 놀라운 초법적 권력자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전세대의 거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자랑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로마의 지도층들이 언제나 꿈꾸었던 것을 획득했으며, 사실 그들보다 훨씬 많이 가져갔다. 자기 스스로도 그렇다고 하고 있으니, 더 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덧글

  • vermin 2009/01/20 23:02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1/20 23:14 # 답글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의 권위보다 약간 더 나아간 점이 있다면, 적을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라고 시오노 할머니 책 어디에서 본 것 같습니다.) ㅡㅡ;
  • Shaw 2009/01/21 01:08 #

    "잔인함이 소진된 것을 두고 관대함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라던가 뭐라던가... 그런 말도 어디선가 봤던 것 같군요.
  • 2009/01/21 00:5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vermin 2009/01/21 00:55 # 답글

    리플 남겼다가 잘못 생각해서 다시 올립니다 ㅈㅅ ㄲㄲㄲㄲㄲㄲ
    율리우스는 가문보다는 씨족 이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는지...
    국궁 주제넘은 지적이었습니다.
  • Shaw 2009/01/21 01:25 #

    제가 잘 쓰는(;;;)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고쳤습니다. 사실 잘 몰라서요. 율리우스는 노멘이니까 씨족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고, 실제로도 그렇게들 번역하는 것 같습니다.
  • 월광토끼 2009/01/21 04:17 # 답글

    '나는 그저 [제 1 시민]일 뿐이다' 라는 표현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리고 전 키케로의 죽음에 옥타비아누스가 기여한 바 때문에 정말 나쁘게 보게 되더군요.
  • ghistory 2009/01/22 02:13 # 답글

    질문드립니다:

    업적록은 무엇이며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지요? 문헌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 Shaw 2009/01/22 02:55 #

    흔히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이라고 부르는 문건인데, 그 자신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개괄적인 내용으로는 저도 위키백과에 나오는 것(http://ko.wikipedia.org/wiki/%EC%95%84%EC%9A%B0%EA%B5%AC%EC%8A%A4%ED%88%AC%EC%8A%A4_%EC%97%85%EC%A0%81%EB%A1%9D) 이상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국내에는 수에토니우스 황제열전(출판명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번역판 1권의 말미에 부록 형태로 간단한 해설과 본문이 실려있습니다.
  • ghistory 2009/01/22 03:38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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