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를 위시하여 도우너, 또치, 희동이 등으로 이루어진 둘리 일당과 고길동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은『아기공룡 둘리』의 중심 테마 가운데 하나이다. 이 대립은 일상 생활속에서 가족 사이, 혹은 이웃간에 벌어지는 감정 싸움과도 일견 흡사한 면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고길동의 중요한 목표가 둘리 일당을 집에서 내쫓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따라서 여기에 맞서는 둘리 일당의 싸움은 일종의 거주권 투쟁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다소 심각한 데가 있다.

<둘리 일당이 고길동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1]『둘리』의 갈등은 단순한 가족간의 티격태격이 아니다.
거주권, 재산권과 관련된 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비록 개그톤의 터치로 표현되거나, 어린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심각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주권, 재산권과 관련된 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비록 개그톤의 터치로 표현되거나, 어린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심각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의 양상을 살펴보면 말싸움끝에 고길동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둘리 일당은 겁을 먹고 도망을 치는 것과 같은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이는 마치 고길동이 대립에서 일방적인 우위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상식적으로도 고길동이 어른으로서 가진 신체적 우위와, 집주인으로서 가진 경제적, 사회적 우위를 생각하면 그가 이 싸움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당연할 것 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고길동은 숫적으로 너무나 열세하다. 둘리 일당은 둘리, 도우너, 또치의 3인방에 희동이와, 후반부에 등장한 코로깨까지 여러명이 함께 행동하는데 비해 고길동의 경우에는 처인 박정자는 물론 철수, 영희같은 자녀들조차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또 둘리 일당 가운데 둘리와 도우너 2명이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길동은 적을 완력으로 완벽하게 제압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른바 고길동 츤데레설이나 고길동 대인배설은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 견해들은, 고길동이 둘리 일당을 배제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전제로부터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2]실제로는 고길동도 둘리 일당을 어느 정도 두려워하고 있으며, 전면전의 조짐이 보이면 그 역시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논의는 후일을 기약키로 하고, 일단은 다음의 예시 컷 하나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고길동도 둘리 일당을 두려워한다.[3]>
그렇다면 이 길고도 불리한 싸움에, 고길동은 어떤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서 임하였는가?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고길동에게 전혀 전략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길동이 어떤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에 따라 행동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아마도『둘리』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다. 에피소드 21「또치, 또치, 또치」에서 고길동은 마치 자신이 둘리와 도우너를 쫓아내기 위한 5개월에 걸친 행동 계획을 갖고 있는 것 처럼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발로 찬다" 거나 "스트레이트 펀치를 먹인다" 는 등 실로 별 의미가 없는 것들로, 고길동이 평소에도 둘리 일당에게 늘 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다지 계획이라거나 전략이라고 부를만한 가치는 없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 "5개월 계획" 은 실제 그런 계획을 고길동이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둘리를 압박하거나 골탕먹이기 위해 한 번 말 해 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다시피『둘리』에 나오는 대사, 특히 둘리와 고길동의 대사는 서로를 모욕하고 공격하기 위한 독설로 점철되어 있다.[4] 등장인물의 대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곤란한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계획이 없었다고 해서 그것을 전적으로 무계획이라 볼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에피소드 42「마술연필(I)」에서 고길동은 둘리 일당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어 스스로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빠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따라 파마를 하거나(둘리가 싫어하는 타입) 파자마를 입고 집 앞을 배회(또치가 싫어하는 것)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또한 에피소드 60「삼불이」에서는 고향 친구 소개로 더부살이 하러 온 청년과 협정을 체결해서 하수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면모를 살펴보면 고길동은 결코 무계획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둘리일당을 상대하는 고길동의 전략은『둘리』의 옴니버스식 구성에 걸맞게 매 에피소드마다 변화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실제 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고길동은 둘리를 배제하고 억누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 점은 둘리 일당과 고길동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있어 일정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지금부터는 그 가운데 두가지 유형에 주목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째, 남의 힘을 빌리는 것과, 둘째, 각개격파 작전이다.
고길동이 둘리 일당을 쫓아내기 위해 남의 힘을 빌리려 했다는 것은, 역시 그가 독자적인 완력으로는 둘리 일당을 축출할 수 없었음을-혹은 그 과정에서 입게 될 손실을 감당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고길동 츤데레설이나 고길동 대인배설에 대한 반증이다. 다음은『둘리』에서 고길동이 타인의 힘을 빌려 둘리 일당을 쫓아내거나 배제시키려 했던 사례가 수록된 에피소드를 뽑아본 것이다.
Ep. No. Ep. Name Ally outcome
(1) 22 마이콜 라스베가스로 서커스단 단원 단원의 실수로 실패
(2) 39 램프거인(II) 경찰 범죄사실 없음으로 실패
(3) 48 오랑우탄 고향 수송작전(II) 경찰 검거 실패
(4) 60 삼불이 삼불이 갈등 지속
(5) 61 제가 있지 않습니까 삼불이 갈등 지속
(6) 62 있긴 뭐가 있어 삼불이 둘리 일당이 집을 나갔다가 조난-결과적으로 성공
(7) 72 드디어 집으로! 오지 마을의 토인 성공 직전에 탈출
(8) 91 약장수 둘리 약장수 노인 성공했으나 둘리가 도망침
(9) 105 둘리 추방 연구회 영매 영매의 패배-실패
(10) 124 안녕! 둘리 오방떡(도우너의 아버지) 성공
고길동이 조력을 받으려 한 세력은 매우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는데, 공통적으로 둘리 일당을 축출-배제시킬 수 있을 만한 능력, 혹은 입장을 지녔다. (1)에서 서커스단 단원은 원래 또치가 소속되어 있던 서커스단에서 온 사람으로, 말하자면 또치에게는 주인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0)에서 도우너의 아버지는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아온 것으로, 도우너를 데려갈 자격과 능력이 충분했다. (7)에서 오지 마을의 토인들은 일단 수가 많았는데, 둘리의 초능력으로 인해 그 잇점이 무너지는 듯 보였으나 곧 그 초능력도 봉쇄해 버렸다. (9)에서 등장한 영매는 영적인 능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둘리의 초능력을 상대할만한 인물이었다. (8)의 약장수 노인은 다소 의외일 수 있겠는데, 이 사람조차도 둘리를 단숨에 포획해서 자루에 집어넣은 뒤 땅바닥에 메쳐서 제압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둘리를 제압하는 방법[5]>
◎ 이하 <2>에 계속.
[1] 김수정,『아기공룡 둘리』5권, p210, 대원씨아이(2005)
[2] http://shaw.egloos.com/1887194
[3] 김수정,『아기공룡 둘리』3권, p339, 대원씨아이(2005)
[4] http://shaw.egloos.com/1853341
[5] 김수정,『아기공룡 둘리』4권, p236, 대원씨아이(2005)
※본문의 에피소드 이름은 대원씨아이 애장판을 따랐으며, 에피소드 번호 역시 애장판의 수록된 순서입니다.




덧글
잠본이 2009/09/14 22:52 # 답글
참 다양한 전략이...>_<
Shaw 2009/09/15 13:46 #
정면대결이 위험하니까요.
아롱쿠스 2009/09/14 23:27 # 답글
간혹 고길동과 둘리 일당이 평화협정이나 화해 노력을 하는 장면도 설명해주실꺼죠~
Shaw 2009/09/15 13:46 #
예, 그게 또 중요한 장면들이지요.
아야소피아 2009/09/14 23:31 # 답글
고길동도 대단하지만 이걸 또 정밀하게 분석하신 Shaw님이 더 대단합니다;;
Shaw 2009/09/15 13:48 #
만화 보는게 대단할 게 있겠습니까.
Fedaykin 2009/09/14 23:40 # 답글
삼불이가 그렇게 집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전개는 달라졌을텐데 무척 아쉬웠습니다.
Shaw 2009/09/15 13:48 #
삼불이는 사실, 그 정도 역할이 딱 적당했던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흠 2009/09/15 12:38 # 삭제 답글
시시하네요 고찰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쓸데없이 에너지를 쓰는 듯
아롱쿠스 2009/09/15 13:14 #
이곳에 굳이 오셔서 이런 답글을 다는 것이 더 '에너지 낭비'가 아닐까 합니다~
Shaw 2009/09/15 15:42 #
내가 시시한 존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