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왕국 비류백제(2) - "비류백제의 멸망" 반테러 동양사



전설의 왕국 비류백제(2)
-비류백제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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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을 통해 비류백제라고 하는, '제4왕조'의 존재에 관한 가설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여기에 의하면,



기원전 4세기 말까지 한반도에는 우리가 알던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 제4의 왕조가 존재했는데, 이 나라는 바로 온조의 형인 비류가 건국한 "비류백제" 였다고 한다. 비류는 중국 사료에서 백제의 건국주로 기록했던 "구태" 와 동일 인물로, 이 비류백제를 도입하면 그동안 백제 건국 전승에서 풀리지 않았던 문제(서로 다른 전승들이 충돌하는 등)들이 모두 해명된다는 것이다.


기발하고 흥미로운 가설임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설득력있는 부분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다소 냉담하게 보자면 '그냥 그럴 수도 있다' 는 정도의 이야기로, 특수한 몇가지 가정(중국 사료에 나오는 구태가 비류와 동일인물이라는 것, 온조 초도가 직산이라는 것 등)을 했을때 백제 건국을 '비류백제' 라는 맥락에서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인 것 뿐이다.

비류백제설의 제안자인 김성호 박사도, 저서의 초반 부분에서 비류백제 가설을 설명한 다음에 이렇게 썼다.


구태=비류설을 증명하여 비류백제를 유도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직까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중략) 즉, 제4왕조(第四王朝)설에 대한 가설검증이 필요하다. [1]

 
그가 어느정도로 철저한 검증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어쨌거나 비류백제설이 정말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왜 비류백제설이 아니면 안되는지"를 보여주는 근거가 많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김성호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대답은 '그렇다' 이다. 비류백제의 '존재' 는 사료에서, 그것도 다름아닌 광개토대왕비문같은 매우 유명하고 중요한 사료 속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그 논지를 따라가 보기로 하겠다. 독자분들께서는 다음부터 몇 단락 동안은 대부분의 문장 뒤에 '~라고 김성호 박사는 주장했다' 를 붙여서 이해하셔도 무방할 듯 하다.


광개토대왕비문의 영락 6년(396년) 훈적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 (6년 병신년에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리잔국토멸(멸망시킴)했다.)

이는 지금까지 아무런 의문없이 백제 정벌 기사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비문에서 백제는 "백잔(百殘)" 으로 쓰여있으며, "리잔(利殘)" 이라는 명사는 여기에서밖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아는 역사에서도, 또 비문상에서도 백제는 단지 전쟁에 졌을 뿐이지 멸망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잔" 국은 토멸당하여 멸망했다. 이는 "리잔국" 과 "백잔" 은 서로 다른 나라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잔국" 이란 어디에 있던 나라였는가?


영락 6년 훈적 기사를 계속 살펴보면, 여기에는 고구려군이 해당 전역에서 공파한 58개 성의 목록이 제시되어있다. 이 58개의 성 가운데 18개는 고구려군이 영락 6년 이전에 미리 공략했던 것인데, 비문에서는 편의상 6년 훈적에 같이 기재된 것이다. 이 성들은 주로 한강 이북에 있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즉 실제 영락 6년에 광개토왕이 공략한 성들은 대부분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아래 지도[2] 참조)


비류백제설에서 근거로 삼는 영락 6년(396) 광개토왕의 남정 경로.
김성호 박사를 비롯한 비류백제론자들은 이 해에 광개토왕이 충남에 있던 어떤 세력을 공격하여
멸망시킨 후 육로로 회군하면서 백제까지 압박하여 항복을 받아냈다고 주장한다.

 



이 사실은 영락 6년의 정토 대상이 된 백제 이외의 어떤 세력, 즉 "리잔국" 이 충남을 거점으로 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아닌 '제 4왕조' 가 실재했던 것이다. 

이 제4왕조가 가설로서 유도했던 비류백제와 동일한 실체였음은 두가지로 증명된다. 

첫째로, 영락 6년에 공파된 성의 목록 가운데는 "■발성(■拔城. 맨 앞글자는 판독 안됨)"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거발성(居拔城)" 으로 생각되며 바로 웅진성의 별칭이다. 웅진성은 비류가 말년에 도읍을 정했던 그곳이다.  

둘째로, "리잔국(利殘國)" 이라는 나라 이름을 분석해보면 그것이 바로 비류백제임이 드러난다. 

즉, 리잔국의 리(利)는『일본서기』에 나오는 웅진의 또다른 별칭인 구마나리(久麻那利, 고마나루)의 리(利)와 일치한다. 또한 잔(殘)자의 경우, 광개토대왕비문에서는 백제를 백잔(百殘)이라고 불러 여기서도 같은 잔(殘)자를 사용했다. 이름에서 돌림자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곧 리잔국과 백잔국이 형제국가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리잔국" 이라는 국명은 그 도읍지와 국가 계보에 의거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백제와 형제국가이면서 웅진에 도읍했던 나라는 비류백제 바로 그것일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증을 살펴볼때, 일단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는 점은 분명히 말해두어야 할것 같다. 특히 '제 4왕조' 가 비류백제임을 증명하는 부분은 비약이 심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거론한 근거 부분, 즉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영락 6년의 정토대상이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리잔국" 이라는 나라이고 또 이 때 고구려군이 공략했던 성들이 충남 일대에 주로 위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는 필시 눈여겨볼만한 것이다. 그것을 제4왕조라고 부르건 무엇이라고 부르건, 어쨌건 4세기 말에 충남 일원에 광개토왕이 백제 국도의 공략보다 우선시하여 직접 정토에 나섰을 정도로 중요한 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어쨌거나, 비류백제설에서 말하는 "일본의 국가기원" 은 영락 6년의 '광개토왕의 비류백제 토멸' 사건과 지극히 깊은 관계가 있다. 비류백제를 멸망시키고 이어 (온조)백제도 격파한 이 전역의 결과 백제왕은 "영원히 노객(奴客)이 되겠다" 며 항복했다. 그런데 멸망당한 비류백제의 왕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문에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김성호 박사의 이어지는 주장에 따르면, 『일본서기』에 15대 천황으로 기록된 응신(應神)이 바로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과 동일 인물로, 그는 광개토왕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국도를 잃었으나 일본으로 망명하여 처음에는 규슈에 상륙했다가 동정(東征)을 통해 기나이지역을 정복하고, 마침내 오늘날의 일본의 모태가 되는 '천황국가' 를 건국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서남부의 본토는 (온조)백제에 넘겨주었다고 한다.[3]

이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몇가지 근거를 거론하고 있으나,『일본서기』의 응신기 3년에 나오는 백제 진사왕 살해 사건을 광개토왕의 남정에 따른 비류백제-온조백제 사이의 갈등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 정도 외에는 유의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비류백제" 의 존재가 전제로 상정되어야 비로소 시작될수 있다. 설령 "비류백제 마지막 왕의 일본 정복" 에서 주어를 에누리하여 "한반도 세력의 일본 정복" 으로 바꾸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해도 그것이 역으로 비류백제의 존재를 입증해주지는 않는다.

필자의 우견으로는, 바로 이점이 비류백제설이 '크게 뻗어' 나가는데 방해가 된 요소인듯 하다. 재야사학을 추종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민족의 일본정복설을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굳이 '비류백제설' 을 채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본정복설이라면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그냥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스토리들이 존재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보통 이런식으로 '그냥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이야기' 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로 받아들여지기가 대단히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들보다 훨씬 정교하고 많은 자료와 부합하는 이론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아까의 의문으로 돌아간다면, 비류백제설에서는 (1) 비류가 건국한 '제4왕조' 가 실재했다는 가설을 세우고, (2) 광개토대왕비문 등의 자료를 통해 그 가설을 증명하고, (3)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건국 과정을 재구성했다.

여기서 핵심은 (2)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비류백제의 존재가 실제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이와 관련된 나머지 논의는 설령 어느정도 일리있는 부분이 있다 해도 본래의 맥락에서 탈락하여 파편화될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광개토대왕비를 통해 '제4왕조' 의 실재를 증명하는 논의는 어느정도 눈여겨볼만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제4왕조가 정말 있었다거나, 그것이 비류백제라고 연결짓는 것은 무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 근거들이 타당할때의 이야기다. 

과연 비류백제설은 타당한 논증을 했던 것인가? 다음 글에서는 그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김성호,『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p77~78, 지문사(1982)
[2] 김성호, op. cit. p82
[3] 그러나 생각해보면 광개토왕의 군대는 어차피 한번 충격적인 공격을 가한 뒤에 돌아갔다. 비류백제의 왕은 다행히 몸을 피해서 살아남았는데다 일본을 정복할 정도의 무력까지 아직 보존하고 있었다면 왜 왕도로 귀환하지 않고 굳이 일본에 남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본토를 남에게 할양해준단 말인가? 『대쥬신제국사』(김산호, 1993)같이 비류백제설을 극히 따르는 책에서 이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매우 구차스럽게 읽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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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라디오 2010/02/20 15:16 # 답글

    리잔국(利殘國)이란게 성립이 안 되죠.

    광개토비문에서 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 부분에서 왕건군은 討利 => 討伐 로 확인되었으니까..
    殘國(잔국)은 성립이 되나, 리잔국(利殘國)은 허상의 나라이름인거죠.

    논리 전개를 함에 있어, 초장부터 허상의 나라이름 가지고 말하는게 되는지라, 뭐랄까..처음부터 잘못 들어가는거죠.
  • 한단인 2010/02/20 15:19 #

    댁이 이런 얘기를 하니 뭐랄까...
  • 박서영 2010/02/21 21:33 # 삭제 답글

    난 백제의ㅣ 와을 이야기했는 데
  • Shaw 2010/02/21 22:16 #

    무슨 말씀인지?
  • 2010/02/22 21: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도사 2010/03/06 02:48 # 삭제 답글

    나라 라는 개념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군요. 세력과 나라는 별개입나다. 비류백제계가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할수있다쳐도 그것이 나라형태를 이루었다고 볼수있는 것은 아무것도없읍니다.
  • Shaw 2010/03/06 12:51 #

    어쩌다보니 비류백제설을 소개하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다음에 올라갈 글에서는 문제점들을 지적할 예정입니다. 조금 더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공주인 2010/11/09 16:06 # 삭제 답글

    온조와 비류가 각기 백제와 십제를 세웠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면 미추홀로 기록된 비류의 국가 - 그것이 십제건 비류백제건 리잔이건 관계 없이 -는 있었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디에서도 원삼국에 해당하는 유물 유적이 나오지 않았고 단순히 이곳 저곳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의 각 고분에서 출토 된 국보급의 유물들은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의 문주왕 이전의 유물들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유적지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매장품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결과로 어쩌면 김성호 선생의 배류백제와 일본의 국가 기원에 담긴 내용을 빛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의 기대 입니다.

  • 공주인 2010/11/09 16:08 # 삭제 답글

    광개토 왕비에 기록된 리잔 백잔은 적대국이기 때문에 비하하여 기록된 국가명이 아닐까 합니다.
    오랑캐처럼 말이지요.
  • 2011/04/01 11:1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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