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왕국 비류백제(3) - "비류백제의 실체" (上) 반테러 동양사


전설의 왕국 비류백제(3)
 -비류백제의 실체(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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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의 말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비류백제설에서 말하는 '제 4왕조의 실재성' 논증이 과연 타당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는 결국 비류백제설의 근본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사전에 정보를 갖고 있지 않던 분들도 이해하실수 있는 글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나, 글의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필자의 좁은 문견으로 인해 관련된 논의들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을줄로 안다. 이점 독자제현의 이해와 질정을 부탁드린다. 


비류백제설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광개토대왕비문의 영락 6년(396년)훈적 기사는 당시 한반도에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아닌 '제4 왕조' 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증거이고, 이 제 4왕조가 바로 비류백제라고 한다. 

영락 6년 훈적이 어떻게해서 제4 왕조의 존재를 입증하는가? 첫째로 비문에는 당해 전역의 주 정토대상이 "리잔국" 이라고 하는, 백제와는 다른 별개의 국가로 기재되어 있다고 하며, 둘째로 이때 공략된 58개성 가운데 먼저 기재된 18개성은 주로 한강 이북에 분포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대부분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18개성은 실은 고구려군이 영락 6년 이전에 이미 공략했던 것들인데 비문에서는 편의상 같이 기재된 것이다. 따라서 영락 6년의 주요 공격 대상은 이 18개성을 제외한 나머지, 즉 충남 일대가 되는 셈이다.


언뜻 보기에 위 논의는 그냥 무시해버리기 어려운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설득력일지, 아니면 기발한 사론에 압도된 독자가 순간 빠진 함정인지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드러날 것이다. 이 글에서는 "58개성" 에 관한 비류백제설의 논의를 먼저 검토하고, 다음으로 "리잔국" 의 문제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김성호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백제본기가 아닌 또다른 객관사료에서 웅진에 또 하나의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만 된다면, 이 나라는 ...(중략)... 비류백제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


여기서 "객관사료" 라는 말이 필자의 마음에 와닿는다. 완전히 객관적인 사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의문은, 필자와 같은 사람이 다룰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비류백제설이 내세운 논거가 일반 상식적인 수준에서 '객관' 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논란이나 의혹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인지 알아보고자 할 따름이다.


396년 광개토왕의 공략지역이 주로 충남이었다는 주장은 결국 비문에 나오는 성(城)들의 위치 비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정은 무엇을 근거로 했는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하『비류백제』로 약칭)에 나오는 언급으로부터 그 근거하는 바를 추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의 사카이 가이조(酒井改造, *원래는 酒井改藏인데 『비류백제』책에는 잘못 인쇄되어있다.)라는 학자가 1955년에 『조선학보(朝鮮學報)』에 게재한 논문에서 상당수의 성을 충남에 비정했다.

2.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교수와 박성봉 교수도 사카이 교수와 유사하게 비정했다.

3. 본논문(비류백제설)에서는 사카이 교수의 연구에서 불합리한 것을 수정하여 비정했다.


이러한 논의는 과연 58개성의 위치비정이 객관적인 진실임을 보장해주는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해소되어야 할것 같다. 

첫째, 김성호 박사가 사카이 선생의 비정에서 '불합리한 것을 수정' 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둘째, 이노우에 히데오, 박성봉 양 선생이 사카이와 유사하게 비정했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이며, 또 그것은 사카이 비정이 학계의 정설임을 보여주는가?

셋째, 사카이 선생의 비정은 반론이 어려울 정도로 합리적인 것인가?


이 중, 첫번째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우선『비류백제』에 실려있는 다음 표를 살펴보는것이 좋을듯 하다. 

<표1.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1982)에 실린 58성의 위치 비정표>



확실히 사카이-김성호 양 선생의 설에서는 많은 성들이 충남에 비정되고있다. 그런데 위 표에서 두 사람의 비정 내역을 비교해보면, 기묘하게도 상호 일치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58개 가운데 7개만이 일치하는 것이다.

비류백제설에서 특히 중요시되는 것은 맨 앞의 18개와 맨 뒤의 3개(이 3개는 명백히 백제 공격과 관련되었다고 주장한다)를 제외한 나머지 37개인데, 여기서 사카이-김성호 비정이 일치하는 것은 산나성(散那城), 모루성(牟婁城), ■발성(■拔城), 구천성(仇天城)의 단 4개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김성호 박사는 사카이 비정 가운데 일부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인정치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2]

불합리한 것을 수정했다고 했는데, 사카이 선생의 논의는 대부분 불합리했단 말인가?

이런 문제는 『비류백제』의 후속작이라 할수 있는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이하 『해상활동』으로 약칭)에서는 더욱 심해진다. 여기서 김성호 박사는 자신의 기존 비정표에서 상당수를 철회하고 새롭게 위치를 정했는데, 그 결과 위의 37성 가운데 사카이와 의견을 같이하는 것은 단 두개(■발성(■拔城)과 세성(細城). 세성은 『비류백제』에서는 일치하지 않던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로 줄어들었다.

<표2.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1996)에 실린 58성의 위치 비정표>

 

객관성이라는 측면을 생각할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광개토왕이 396년에 공략한 성들이 대부분 충남에 있었다고 하는 비류백제설의 논거는, 학계 일반에서 동의하는 신뢰할만한 다른 연구에 바탕을 둔것이 아니라 김성호박사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성들이 충남에 비정된다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마치 사카이 선생의 연구가 비류백제설의 근거가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석결과를 간단히 요약했기 때문에 유도된 착시일 뿐 실제로는 보다시피 김성호 박사는 사카이 비정에서 힌트만 얻은 정도이고 대부분의 지명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고증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객관사료' 인가. 

그것은 결국 박사의 독자적인 견해가 어느정도로 타당한 것인지 묻는 것과 같다. 이 문제는 위에서 제시한 세가지 의문점들이 모두 해소된 후에 다시 검토해보려 한다.

 




[1] 김성호,『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p78, 지문사(1982)
[2] 표에는 사카이 가이조 선생의 비정 가운데 몇개가 빠져있는데, 김성호 박사의 비정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자세한 것은 酒井改藏, 「好太王碑面の地名について」, 『조선학보』 제8집(1955) 참조.



**酒井改藏 선생님의 성함은 독음하는 방법을 몰라서 일단 일반적인 음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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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야스페르츠 2010/03/07 22:09 # 답글

    이건 마치 아인슈타인의 발언을 가지고 창조론의 근거로 삼는 꼴인 듯....
  • Shaw 2010/03/08 01:01 #

    그렇게까지는...;;

    뭐 결국에는 순환논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좋게 생각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보면 볼수록 김박사는 천재라, 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능.
  • 들꽃향기 2010/03/08 00:00 # 답글

    사실 광개토대왕의 정벌이 충남까지 내려갔다면, 웅진도 결코 안전권이 되지 못했을테고, 그럼 결국 웅진으로 천도(피난)을 가서 도읍을 정하는 일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58개 가운데 7만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군요. 잘 읽고 갑니다. ^^
  • Shaw 2010/03/08 01:02 #

    졸라짱센 대왕님앞에 안전한 곳따윈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hyjoon 2010/03/08 00:32 # 답글

    덕분에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
  • Shaw 2010/03/08 01:02 #

    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단인 2010/03/08 01:10 # 답글

    아닛! 고작 7개 밖에!!!
  • Shaw 2010/03/08 17:38 #

    뭘 그러십니까. 천재를 어제 오늘 보신 것도 아닐텐데.
  • 한단인 2010/03/08 17:50 #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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