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은 한반도 안까지 들어와 있었는가? 반테러 동양사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만리장성 개략) 



위 지도와 유사하게, 전국연-진-한 시대의 장성이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 서북 내부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중국의 역사 왜곡" 이라고 여기는게 사실이다. 

'역사왜곡' 이라는 것의 개념이 무엇이라고 생각할지는 좀 더 복잡한 문제이겠다. 그러나 장성을 한반도까지 길게 연장해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 감각에서의 역사왜곡이라고 해야 할 만큼 제대로 된 근거도 없고 그 당시의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서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물론 단지 위의 그림과 같은 주장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것 만으로도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이 분명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예를 들어 시대를 막론하고 장성의 "진짜 끝" 은 산해관이라던가.)판단을 하고 계시기에, 꼭 그것이 감정상의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장성은 전 시대에 걸쳐 불변이었던 것이 아니며, 오랜 시간에 걸쳐 새로 만들어졌다. 단지 기존에 있던 것을 보수해서 쓰는 정도가 아니라 위치가 다른 곳에 새롭게 축조하는 일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만리장성" 이라고 부르는 구조물은 대개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장성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 이전 시대의 장성의 모습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문헌에 남아있는 묘사를 통해,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과거 장성의 유지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연-진 시대 장성의 동쪽 끝 부분에 대해서는 기왕에 서로 대립되는 학설들이 존재한다. 지금으로서는 몇가지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 중 어느 하나가 특별히 유력한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인정-부연되는 학설은 진나라때의 장성이 "요동" 까지 왔다고 하는 '요동설' 이다.[1] 여기서는 주로, 『사기』에서 진장성이 요동에 이른다고 한 것과, 전국시대 연나라가 쌓은 장성이 양평(오늘날의 요양으로, 요동군의 중심지)에 이른다고 한 기록, 그리고 현재 내몽고 동부와 요령 지역에 남아있는 연 · 진 장성의 유지가 유의된다.[2

양평의 위치. 담기양 주편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여기서 장성의 동단이 "요동" 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양평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략 그 부근(물론 '부근' 이라고 해도 정말 지척인 것은 아니고, 범위는 제법 넓다)을 염두에 둘 수는 있겠다. 실제로는 양평에 좀 못 미쳤을 수도 있고, 또는 그보다 더 나아가서 요동군의 주요지역을 보호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필자도 여기저기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왔는데, 이제부터 좀 더 개인적인 이해가 증진되기 전까지는 '요동설' 로 쓰려 한다. [3]

또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혀두자면, 개인적으로는 이 '요동설' 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요하의 동쪽 지역에서는 요새나 초소같은 것이 구축되어 있었다는 주장도 있는데([2] 참조),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도 여전히 장성의 일부라고 해야할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 같은 것은 사실 전혀 중요할 게 없다. 다만 이런 글을 쓰게 되면, "한반도 안에 만리장성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완전히 엉터리가 아니라고 하는 걸 보면 틀림없이 그 주장을 믿고 있는 사람일거야." 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나올 가능성이 크므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한번쯤 강조하고 싶다.

 

 

아무튼, 요동설의 경우 신뢰할만한 문헌기록이 확실하고, 또 이를 뒷받침하는 장성의 유적도 남아있으므로 대단히 근거가 뚜렷한 학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성이 한반도 내까지 뻗어있었다고 하는 주장에도 역시 근거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진서》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조에,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시작된 곳(秦築長城之所起)" 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또《사기》의 주석인 《사기색은》에서는, 《태강지리지》라는 문헌을 인용해서 "낙랑 수성현이 갈석산이 있어 장성이 시작된다." 라고 설명했다. 이 기록들을 보면,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진나라 장성이 이곳을 기점으로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이 '낙랑군 수성현' 기점설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즉, 저 유명한 "난하 요수설" 의 맥락에서 인용된 예가 자주 있었다. 이 주장에서는 보통 진나라 장성이 요동은 커녕, 오늘날과 거의 차이가 없이 난하 하류 동편의 산해관 인근까지만 왔을 것으로 여긴다. 즉, 문헌에서 진장성의 기점으로 본 '갈석산' 을 오늘날 하북성 진황도에 있는 (이름이 같은)갈석산과 같은 산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연 · 진시대의 장성 유지를 보면, 산해관 근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북쪽인 내몽고의 적봉을 지나 동서로 길게 뻗어있다. 따라서 이런 시각은 성립되지 않는다.

갈석이라는 지명은 여러 군데에 있었다고 하는데, 만약 진나라 장성이 '갈석산' 에서 시작된다고 한 이야기에서 나오는 갈석산이 정말 오늘날의 갈석산과 같은 것이라면, 이는 결국 문헌에서 잘못된 정보를 다룬 셈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 갈석산은 다른 곳에 있던 지명을 말한 것이었다고 본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낙랑군은 오늘날의 한반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낙랑군의 속현 가운데 하나인 수성현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자연 그것은 한반도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 된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 《진서》당빈전에는 이와 관련하여 역시 의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빈이 유주에 있을때의 공적으로 "...마침내 옛 국경을 천리나 개척하여, 진(秦) 장성을 복구하였다. (장성은)온성에서부터 갈석에 이르니 산과 계곡을 이어 3천리에 달하였다." 라고 설명한 기사가 그것인데, 유주 관내에서 시작하여 3천리의 장성을 복구했다면, 아무래도 그 동쪽 끝은 한반도 내로 들어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당빈이 정말 진 장성을 복구했을까? 어쩌면 낙랑군 수성현에 이르는 장성이라는 것은 진(秦)나라때의 옛날 장성이 아니라, 당빈이 새롭게 장성 복구를 하면서 기점으로 염두에 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장성 복구 자체도 완결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가능성 차원의 이야기고, 어쨌건 위와 같은 식으로 진 장성이 한반도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이야기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 주장에는, 실물 증거라고 하는 것도 붙어있어 더욱 문제가 된다. 바로 북한에 있는 이른바 "대령강 장성"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유적은 평안북도, 주로 청천강의 지류인 대령강을 따라 120km 에 걸쳐 뻗어있는데, 거시적인 위치만 보면 그야말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 부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에 딱 좋은 곳에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를 고려시대의 장성으로 보고, 보통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령강. 이 강을 따라 120km 에 이르는 장성의 유적이 남아있다.
그 정체가 정말로 진나라 만리장성일까? 아니면 고려시대에 만든 장성일까?



사실 이 대령강 장성에 대한 정보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북한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일단 유적을 조사한 측에서 고려시대 장성이라고 하니, 당장 이를 진장성의 동단에 연결하는 견해는 어느정도 근거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외에도 북한에서 발견된 전국연계의 와당이나 진계의 무구류, 대량의 명도전 등 이곳에 연-진 시대에 중국계 세력이 뻗어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만한 실물 자료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장성이 북한 지역에도 있었을 개연성은 전해주지만 실제 장성 그 자체의 존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사기》조선열전에서 "연나라는 전성기때 조선, 진번을 공략하여 복속시켰는데 관리를 두고 장새를 쌓았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는 요동외요에 속하게 했다." 라고 했던 것을 상기하면, 본격적인 성벽은 아니라 해도 요새의 성격을 지닌 구조물들이 구축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장성' 이라는 것을 정확히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살펴본 바와 같이, 진나라 장성이 한반도 내에 들어와 있었다는 견해 역시 나름대로의 증거들을 갖추고 있다. 근본적으로, 세간에 흔히 알려져 있듯이 고구려 성을 중국 성인 것으로 꾸며서 날조했다던가 그런 것들로부터 나온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특히 오랫동안 장성의 동단을 찾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 낙랑군 수성현 갈석산 기점설의 존재는 참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낙랑군 수성현설은 요동설의 입론을 위해서는 당연히 기각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문제의 대령강 장성의 성격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 한국의 고대사나 고대 지리를 논의하는데 있어 북한 지역은 '정보의 보고' 여야 한다. 그런데 정작 바로 그 북한 지역이 정치 상황에 의해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 되어 있다. 

그리고 결국 이 글은, (당연히) 그래서 만리장성이 어디까지였다는 것인지 밝히고자 하는 글이 아니므로, 이렇게 어정쩡한 곳에서 마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된다. 


Carthago delenda est. 





   
[1] '요동설' 을 비롯하여 이 글의 내용은 대부분 노태돈,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한국사론 23 (1990)에서 나왔다.


[2]
"요서 지역의 경우 연북장성의 주향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줄기는 서쪽 흥화에서 시작하여 동쪽 고원을 지나 다륜 ·  풍령 · 위장 · 객라심 · 적봉 · 건평 · 오한 · 나만 · 고륜 · 부신 · 창무 · 법고 · 본계 · 관전을 지나 용강에 이른다. 그보다 밑에 위치하고 있는 다른 한 줄기는 내몽고 자치구 화덕현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객라심기와 적봉시 남부를 거쳐 노합하를 넘어 요령성 건평현 북쪽과 내몽고 자치구 오한기 남부를 통과하여 요령성 북표시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남북 장성 사이의 거리는 40~50km 에 달한다. 이 두 갈래의 장성 중 명확하게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남쪽의 고원에서 북표시 지역에 이르는 장성이다. 북쪽에 위치한 장성은 대개 오늘날의 의무려산 근처에서 멈추며 요하 근방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는 연북장성은 부신 북쪽에서 시작해 창무 · 법고를 지나 개원에 이르는 것이다. 이후 장새, 즉 요새나 초소같은 것이 동남쪽으로 무순의 동쪽을 지나 본계의 동쪽을 거쳐 관전의 북쪽에 이르며, 최종적으로는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 북부 용강에 이른다고 한다." 송호정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p304~305, 푸른역사(2003)

[3] 오강원 선생은 패수의 위치를 논하면서(「고조선의 浿水와 沛水」강원사학13 (1998) ) 유력한 것은 청천강설과 압록강설인데 양설의 논자들이 대체적으로 "연진장성의 정확한 동단 지점은 파악할 수 없으나 적어도 요하중류역에까지는 이르렀다." 는 점에서 공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 그런데 소문에는 진나라때 유물도 나오기는 했다는데, 진짜인가?? 필자는 아직 보고서를 보지 않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모른다. 나중에 확인을 해 보면, 이게 터무니없는 말이었는지 정말 그런 것도 있는지 알 수 있을테지만, 그것은 또 어느 세월이 될지 모르겠다.



※ 본문은 위키 지도의 세부를 해설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수정했습니다.(10/03/29)



핑백

덧글

  • Sanai 2010/03/27 16:49 # 답글

    십만 환빠 양병설에 의해 육성된 환빠들이 몰아닥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 만리장성은 한반도부터 시작되었다능. 만리장성의 기원은 환국이라능!(이라고 말이죠.)
  • Shaw 2010/03/27 18:23 #

    그러면 저는 조직에서 시말서를 써야 하는데...
  • hyjoon 2010/03/27 17:17 # 답글

    ............조사가 더 필요한 것은 맞는 것 같긴 합니다. 북한 애들은 단군릉을 가지고 장난을 친 전적이 있어서......ㅡㅡ
  • Shaw 2010/03/27 18:29 #

    저 경우에는, 풀린 이야기대로라면 잘 알려진 황당한 이야기들처럼 이상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외부적인 의혹이 없는 재조사를 한다 해도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이겠지요.
  • 야스페르츠 2010/03/27 17:27 # 답글

    솔직히... 그분들의 산해관 불변설(?)을 떠올리면 차라리 중국의 청천강 동단설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싶어집니다.
  • Shaw 2010/03/27 18:30 #

    두령님의 텔레파시 못 받으셨냐능.
  • 消爪耗牙 2010/03/27 17:41 # 답글

    秦二十五年上郡守厝戈.
  • Shaw 2010/03/27 18:30 #

    헐 조작.
  • 한단인 2010/03/27 19:43 # 답글

    일단 저는 야스페르츠님이 인용하신 지도를 납치했다는 이유만으로 별로 상관도 없는 글에서 엉뚱한 화풀이를 당한 것에 비분강개하고 있...(응?)
  • Shaw 2010/03/27 21:40 #

    저 지도가 뭐랄까 좀... 사람을 격동시키는 데가 있는 모양입니다. 조심해서 사용한다 해도 엉뚱한 오해를 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지요.
  • 들꽃향기 2010/03/27 21:14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저는 사실 장성의 위치와 종착점에 대해서 큰 지식이 그리 없었는데, 여러가지를 알고 고민하고 갑니다. ^^
  • Shaw 2010/03/27 21:47 #

    예, 감사합니다. 저것도 그렇고 서쪽도 그렇고 진 장성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 소하 2010/03/27 21:46 # 답글

    저는 태강지리지의 기록을 신뢰합니다. 어의와 관련된 것인데, "장성"이란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만리장성의 규모보다 더 넓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과 관련된 포스팅을 따로 해야겠습니다.
  • Shaw 2010/03/27 21:55 #

    포스팅 올리시면 좋은 가르침 받도록 하겠습니다.
  • 프랑켄 2010/03/27 22:42 # 답글

    저도 나름 탈민족주의자라 생각하는데, 장성이 한반도까지 뻗어있는 지도를 보니 마음이 꺼림직한 게 사실이군요. 진실이라면 인정해야겠지만, 요동까지는 몰라도 이건 사실이 아니었음 하는 소망이군요.
  • Shaw 2010/03/28 01:49 #

    예, 많은 분들이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 쑈를 해라 2010/03/28 01:02 # 삭제 답글

    낙랑군이 한반도 서북부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네 생각자체가 개에러
  • Shaw 2010/03/28 01:51 #

    학계를 뒤집으셨을 때 따르겠습니다.
  • ㄲㄲㄲ 2010/03/28 05:31 # 삭제

    ㄲㄲㄲ 한반도 서북부에서 발굴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한계 유물 유적들은 전부 다 수입품인 거죠? 아니면 전부 다 일제의 조작이거나. 아님 짱개들이나 북한의 조작.ㅎㅎㅎ
  • 쑈 끝은없는거야 2010/03/28 01:27 # 삭제 답글

    http://shaw.egloos.com/ 블로그를 갖고 있는 thwmunba라는 자의 구라 모음의 일부를 알려드립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8204525&answerNo=2
    (7)고구려, 동해안의 화려성 공취(AD 118년) 근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6년

    ㅁ삼국사기에는 화려성을 공격했다고 했지 '공취'했다고 한 바가 없음.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7247482&qb=7J207ZmU7IKsIOycoOydkeuRkA==&enc=utf8&section=kin&rank=1&sort=0&spq=0&pid=fHRkAz331y8ssv9S46sssv--441400&sid=S5UEWWy9lEsAAHc5@ew

    심지어 1959년에 나온 단기고사 한글판 주석에 수록된 시(詩)- 이 시는 단기고사의 원저자인 이화사의 스승인 유응두가 개인적으로 쓴 것임- 까지 그대로 베껴 놓았음.

    ㅁ 이화사의 스승이 유응두라는 근거제시도 없이 스승이라고 단정.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65080639&qb=6rCA7ISt7JuQ&enc=utf8&section=kin&rank=1&sort=0&spq=0&pid=fHRkwz331xwssaJ47D4ssv--355986&sid=S5UEWWy9lEsAAHc5@ew

    동부여 가섭원을 강릉으로 보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추정입니다. 강릉의 옛 이름은 신라시대에 명주(溟州)였는데, 그보다 옛날에는 하슬라(何瑟羅), 또는 하서량(何西良)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하서량이 가섭원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삼국사기는 강릉을 가섭원으로 보았습니다.

    ㅁ 삼국사기는 가섭원의 위치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음.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날조를 일삼고 있는 것이 이글루스의 식민빠들의 실체입니다.
  • Shaw 2010/03/28 01:56 #

    제가 실제 잘못 쓴 부분들은 말씀드렸다시피 모두 고쳐놓겠습니다.
  • 사람 2010/07/23 10:17 # 삭제

    그래도 thwmunba님의 확실하게 근거를 제시하셔서 일부 사학계의 주장에 반대하시며 늘릴건 늘리시니 식민사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말 식민사학에 빠지신 분이라면 더더욱 은패하고 축소시키셔야지요.
    그보다 이 링크의 질문 작성자가 정말 식민사학에 찌든 패인이지요. http://kin.naver.com/qna/detail.nhn?dirId=111001&docId=113741455
  • ㄲㄲㄲ 2010/03/28 03:33 # 삭제 답글

    듣기로는 진시황 25년명 청동검인가 창인가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디서 주워들은지라 자세한 건... ^^;;

    그나저나 진나라의 장성은 몰라도 세력권 자체는 청천강 선까지 내려왔다는 게 정설이 아니었슴둥??
    그렇지 않다면 고조선이 수복했다는 진고공지와 패수가 어디인지부터가 불분명해지게 되는데...???
  • Shaw 2010/03/28 03:58 #

    진25년명 동과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진계 무구라고 쓸 때 염두에 두었던 유물입니다. 위 消爪耗牙님 리플에서 언급된 것도 이것으로 압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연-진 시기 고조선과 중국 세력의 경계를 청천강으로 잡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낙랑군 수성현 갈석산 기점설을 인정한다면 달라지게(예를 들면, 용강이라던지) 될 것입니다.
  • 한국지 2010/03/28 08:07 # 삭제 답글

    분명한 실물근거 없이 추정에 따른 것이면 그렇다고 구별해서 표시하는게 온당한 태도이므로 분명 저 지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저 그림은 단순히 한반도 안으로 들어온게 아니라 중국쪽의 학설 중에서도 중국 국경을 최대한 잡아늘린 설에 입각한 그림입니다. (연,진 대의 국경은 대동강, 한 대의 국경은 청천강 ; 그러나 중국학계의 다수설은 담기양의 역사지도집에서처럼 연나라 때는 청천강=대령강 장성, 진나라 때는 대동강, 한나라 때는 다시 청천강임.)

    저도 기본적으론 shaw님 의견과 대체로 비슷하게 '요동설'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秦 시기에 진나라가 압록강을 넘어 잠시 진출하면서 대령강을 따라 몇몇 요새를 쌓았는데, 태강지리지나 진서에서 보이듯 晉 시기에 이걸 수축하면서 이거까지 다 포함해서 秦장성의 유지로 인식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기에서 '秦 장성이 임조에서 요동까지'라고 한 것도 크게 보면 이와 서로 어긋나는 기술은 아니구요. 대령강 일대에 대해 우리 학계의 체계적인 조사가 있을때까지는 확신할 순 없으나, 저도 현재로서는 정황상 이게 맞는거 같습니다.

    다만 燕장성과 秦장성은 경우가 다릅니다. 사기에서 '燕 장성이 조양에서 양평까지'라고 명시한 것을 반박할 만한 다른 문헌근거도 없고 별다른 유물 근거도 없습니다. 대령강(청천강)이냐 용강(대동강)이냐는 그 실제내용이 매우 다른 것으로, 용강이면 무려 평양의 서남쪽입니다. 秦장성이 그랬다고 해도 이상한 일인데, 하물며 '연북장성'이 용강까지 뻗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네요. '용강에까지 장성의 유지가 이어지고, 그 유지가 연나라 때 쌓은 것'이라는 중국학계 추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위치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Shaw 2010/03/28 18:10 #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실물 유지와 추정을 구분하는 지도가 더욱 좋은 것이겠습니다. 위키 지도는 유명세 때문에 쓴 것이지만, 이왕 이런 글을 쓰려면 더 좋은 지도도 올려서 비교를 해야 하는데 미처 제가 헤아리질 못했습니다.

    저 지도에서 연장성을 그릴때 염두에 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육불이 비슷한 주장을 했던 적은 있습니다. 장새가 장성의 동쪽 끝으로부터 대동강까지 이르렀다고 하는데, 물론 김육불은 장성과 장새를 구별했지만 말입니다. 다른 논점들도 있겠습니다만, 대개는《사기》조선전에 나오는 패수를 청천강이나 대동강으로 보면 그런 문제가 생길 여지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편 용강에 장성유지로 볼만한 것이 있는지도 저는 모릅니다만, 일단 저건 낙랑군 수성현 기점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로《독사방여기요》에서 수성이 평양의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 한국지 2010/03/28 23:09 # 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진축장성의 시작이 평양의 남쪽이면 도대체 고조선 왕험성은 어디에 있었단 말일까요? 독사방여기요에 별다른 근거제시 없이 결론만 나와있으나, 아마도 한서 지리지의 패수(청천강)와 고구려 때의 패수(대동강)을 구분하지 못하고 헷갈려서 잘못 고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옛 주석가(조선의 실학자 이전, 청말의 정겸 이전)나 중국의 명청대 역사지리서에서 이런 류의 고증 오류가 많듯이요.

    저 지도가 근거하고 있는 설을 비롯하여 연 또는 진 대에 청천강(대령강)을 넘어 대동강선(용강)까지 진출했다는 중국 학설의 경우, 태강지리지를 신뢰하느냐 여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관건은 실물 유지의 확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논증의 기본얼개가 <태강지리지에 따르면 진축장성의 시작점은 낙랑군 수성현이다. 그런데 용강에 장성의 유지가 존재하고 이게 바로 진축장성 또는 연장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용강(또는 평양의 서쪽)이 낙랑군 수성현이며 그곳까지 중국왕조가 진출한 것이 확증된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린 것인데 개인 시간을 내어 성실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적인 게시판도 아닌 개인블로그에 잡다한 글을 너무 길게 달아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 Shaw 2010/03/29 01:06 #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강 부근이 장성의 동단이라고 하려면 최소 그곳이 수성현이었음이 증명이 되던가, 보다 확실하게 장성 유지로 볼만한 것이 발견되어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고 패수의 위치로부터 끌어내려 한다면 정황논리의 성격이 강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전의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는 것도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논의에 비추어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각임에도 틀림없지요.

    독사방여기요같은 전근대 시대의 고증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제 사적인 생각으로는 수성이 용강이라면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초원 4년 호구부에서 수성은 패수, 탄열 같은 것들과 함께 묶여 있다고 하는데, 실제 그러하고 이게 위치를 반영한다는 논의가 옳다면 평양 부근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지요.

    좋은 코멘트 남겨 주셔서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위키 지도의 세부까지 근거가 충실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는데, 일단 이를 수정해 보았습니다. 말씀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갈 뻔 했습니다.
  • ㄲㄲㄲ 2010/03/29 02:43 # 삭제

    음...그런데 고조선 때의 패수(浿水)는 압록강 아니었슴둥? 대동강은 열수(列水)라고 불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패수가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는데, 만일 패수가 청천강이나 대동강이라면 고조선은 대체 어디에 있었다는 말이냐능...???

    그건 그렇고,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도 의문이긴 하지만, 낙랑군이라고 해서 꼭 평양 부근에 비정해야 할 당위성은 없는 것 같네요. 엄밀히 말하자면 당시의 평양에 있었던 것은 군의 중심 치소인 조선현(朝鮮縣)일 뿐이지, 낙랑군의 관할 영역은 거의 한반도 서북부 전체였으니까요.

    제 생각으로는, 수성현의 위치는 대략 청천강 유역이거나 그 이북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수성현 갈석산이 진 장성의 시작점이라고 했는데, 당시 정황상 진나라가 한반도 내에서 장성을 축조할 수 있는 지역은 그쪽밖에 없다고 사료되거든요. 진 장성이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왔다면 이건 그때까지 고조선이 수도인 왕험(평양) 지역조차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건 정말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진대까지는 고조선의 영역이 평양에 이르지 못했고, 진 멸망 이후 영토를 수복하여 평양을 수도로 삼은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진나라 시기에도 고조선이 엄연히 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만큼, 아무리 진나라에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막장 상태까지 전락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그리고 <위략>에 보면, "진이 장성을 쌓아 요동까지 이르게 하자, 고조선의 부왕이 진의 습격이 두려워 진에 복속하였으나 조회는 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있는데, 혹시 이게 진이 청천강 이북에 장성을 축조하던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압록강변까지만 장성을 쌓았다면, 그쪽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조선이 굳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조공을 바칠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저 기사에서 말하는 '장성'이란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 장성이냐 하는 것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를 비정하려면 "진 장성의 시작점"이라는 기록이 있는만큼, 먼저 장성이 축조되었다는 실물 증거의 발견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장성의 시작점이라는 갈석산이 대체 무슨 산을 가리켜 이른 것인지 심히 궁금해지는군요. 분명히 평안도 내에 있는 산 중에 하나일텐데 말이죠 ^^;;
    설마 묘향산은 아니겠지....

    아, 그리고 이건 그냥 궁금해서 질문 드리는 건데요,
    영동7현과의 자연 경계를 이루었던 단단대령은 현재 학계에서 어느 곳으로 보고 있나요? 뇌입원 백과사전에서 단단대령이 무려 "백두산을 부르던 옛 이름"이라고 나온 것을 보고 좌절하는 중입니다;;;;;;;
  • ㄲㄲㄲ 2010/03/29 03:01 # 삭제

    백과사전 찾아보니 단단대령은 백두산(ㅡㅡ;;), 태백산맥, 강원도 대관령, 함경남도 황초령 등으로 비정되는 것 같던데, 비정에 따라서 차이가 상당히 심하군요...

    어느 지역으로 비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까요? ^^
  • Shaw 2010/03/29 22:48 #

    《사기》조선전의 패수를 압록강으로 보면 여러가지가 무리없이 설명되는게 사실입니다만, 이를 청천강이나 대동강 등 다른 곳으로 보는 논의들도 있습니다.

    음... 청천강이라고 해도 좀 그렇긴 한데, 대동강이라고 해 버린다면 (비록 패하기는 했다지만)전국연과도 세력을 겨루었다던 고조선의 이미지와는 너무 차이가 나는 감이 있지요. 사실이 그랬다면야 또 어떻게든 해석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꼭 그렇게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아, 그리고 이미 보셨을것 같습니다만 단단대령은, 중국정사조선전의 주석에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철령이 유력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이 사용되는 담기양 역사지도에서는 단단대령이 꽤 길게 늘어서 있는 것 같습니다.
  • 불온 2010/03/28 09:45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뭐.. 만리장성과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는 만리장성은 모두 명청대 형식의 장성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경우에 따라서는 목책이나 토책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을 건데 이런 생각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 Shaw 2010/03/28 22:18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명대 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도 많은 것 같습니다.
  • ㄲㄲㄲ 2010/03/31 00:05 # 삭제 답글

    이병도는 수성현을 지금의 황해도 북단의 수안(遂安)으로, 갈석산은 요동산(遼東山)으로 비정했더군요. 하지만 수성현이 진 장성의 기착점이라는 기록은 '요동산'이라는 명칭에서 견강부회한 것으로 보아, 터무니 없는 설이라고 일축했다능...
  • Shaw 2010/04/03 00:06 #

    음, 나중에 이상한 소문에 연루되기는 했지만요..
  • 너뭐니 2010/04/10 08:16 # 삭제 답글

    씰데없는 소리...식민사학에 쩔어가지구...
  • 너야말로 2010/04/13 01:22 # 삭제

    ㅉㅉㅉㅉㅉ...불쌍한 중생이로고. 중생아, 네 눈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느냐?
  • 두류산인 2010/06/29 20:11 # 삭제 답글

    平壤은 왕검성이요, 봉천(심양)은 서검성이다.
    압록강은 오리목처럼 푸른 물이라고 해서 압록강(중국의 강물은 모두 탁해서 우리처럼 맑은 데가 없음)
    청천강은 살수, 대동강이 패수....
  • 파랑나리 2012/11/09 23:14 # 답글

    한반도에 장성을 쌓은 게 아니라 그냥 나무 울타리 정도를 세운 게 아닐까요?
  • 나랑드사이다 2014/03/15 00:28 # 삭제 답글

    어떤 책에서 노태돈 교수나 송기호 교수 등이 해당 유물을 만리장성이 맞고, 이를 평양 근방까지 늘여놓았다고 비판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노태돈 교수가 정말로 저런 주장을 했나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나쁜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정말로 궁금해서 여쭤보는 것이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Shaw 2014/03/19 17:23 #

    『단군과 고조선사』에 실린 노태돈 선생의 글을 보면 서북한의 만리장성 유지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령강 장성'의 성격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나온 부정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것은 책을 참고 바랍니다. 송기호 선생에 대해서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 게으른 바다표범 2017/11/07 00:22 # 답글

    실제 장성의 시작점은 "온성"인데...
    당빈의 온성-갈석 진장성 논란에서 온성의 위치를 고증하는 행위가 누락된것이 아쉽네요
  • 마르 2019/02/13 09:59 # 답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으면 대령강 장성을 공동조사할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된 만큼 오래 지난 글이지만 덧글이라도 남기는게 예의인것 같아 인사드립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