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후예들 (12) - 호랑이가 없는 동안. 달려라 공화국

 
피로스 전쟁⑧





피로스의 첫번째 이탈리아 원정은 그가 군대를 이끌고 시칠리아로 떠나버리면서 2년 4개월만에[1] 엉뚱하게 마무리되었다. 피로스는 왜 시칠리아로 갔는가? 그가 타렌툼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이탈리아로 왔던것 처럼, 이번에도 시칠리아 사람들이 그를 불렀다.

당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를 완전히 집어삼킬 기세였다. 거의 모든 지역이 카르타고에 제압되었고,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시라쿠사는 5만 대군과 100척의 군선으로 봉쇄되고 있었다. 시칠리아인들이 피로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낼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피로스의 의중은 전반적으로 불분명하다.


비슷한 시기에 피로스는 두가지 새로운 '영광'의 가능성을 받아들고 있었다. 하나는 바로 시칠리아 섬을 카르타고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지배자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또다시 마케도니아 왕권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마케도니아 왕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가 갈리아족과 싸우다가 죽음을 당해서(기원전 279년) 그 자리를 두고 혼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2]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피로스는 하필이면 두가지 좋은 기회가 한꺼번에 찾아왔다면서 불평했다. 시칠리아를 택하자니 마케도니아가 아깝고, 마케도니아로 가자니 시칠리아가 아깝다.

결국 왕은 전자를 선택했다. 이는 분명 피로스의 제국 건설 기도설(먼저 이탈리아, 시칠리
아, 카르타고를 정복하고 그 힘으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도 제압한다는 것)을 연상시키는 결정이다. 시칠리아는 그에게 일종의 돌파구였을 수도 있다. 로마 공화국과의 전쟁은 별로 잘 되고 있지 않았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그의 군대도 큰 피해를 입었고, 보충 인력이나 물자도 차츰 바닥을 보였던 것 같다.[3] 이탈리아의 도시와 부족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의 충실성은 처음부터 의심스럽기는 했다.


피로스는 먼저 키네아스를 시칠리아로 보내서 사전 교섭을 담당하게 하고, 밀론에게는 일
부 병력을 주어 자신이 없는 동안 타렌툼과 그 밖의 지역을 수비하도록 했다. 타렌툼인들은 피로스에게 "로마와의 전쟁에 전념하던지, 아니면 아주 떠나서 더이상 우리에게 간섭하지 마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한편 피로스의 움직임을 포착했는지 카르타고-로마 동맹이 행동에 나섰다. 카르타고 함선에 로마 병사들이 타고 레기온으로 출동해서 메시나 해협을 감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도시를 함락시키지는 못했지만,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쌓아둔 목재를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타렌툼을 출발한 피로스는 일단 로크리로 갔다가, 타우로메니온의 참주 틴다리온도움을 받아 카르타고 함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시칠리아에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기원전 278년 봄, 혹은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피로스의 시칠리아 상륙. 그는 타우로메니온 참주의 지원에 힘입어 강력한 카르타고
함대와 충돌하지 않고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표시된 진로나 배치는 대략적인 것이다.

 


하지만 피로스가 바다 너머에서 성공하건 말건, 그의 이탈리아 '동맹'들은 큰 어려움에 처
하게 되었다.

피로스가 떠나버린 것을 알자 로마인들은 용기를 되찾아, 그를 불러들인 자들을 공격하는데로 관심을 돌렸다.
(Zonar. 8.6)

당장 피로스가 떠난 그 해부터 시작해서 내리 3년간 삼니움, 루카니아, 브루티움은 공화국 군대와 싸워 패배하거나, 영토가 휩쓸려 큰 피해를 당했다. 그리스계 도시들도 흔들렸다. 헤라클레이아는 일찌감치 로마와 화의를 체결해 버렸다.[4] 크로톤에서는 친 로마파와 반 로마파가 대립하여, 기원전 277년에 친 로마파가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5]와 연락을 취해 그의 군대를 맞아들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루피누스는 피로스가 남겨둔 수비대를 기만했고, 크로톤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로크리는 내부에서 친 로마파가 정권을 잡았는지 연합에서 떨어져 나와 공화국 편에 가담했다.


기원전 278년-기원전 276년 상황. 실제 전투 발생 위치는 대부분 알 수 없으므로 단지 개략적으로 전투 대상
과 시기만을 표시.카울로니아는 집정관 군이 아닌 캄파니아 용병에 의해 파괴되었다. (기원전 277년?)

 


기록들이 짧아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우나, 기원전 278년부터 로마 공화국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여 3년간 삼니움, 루카니아, 브루티움 등지에 파상적인 공세가 가해졌다고 이해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6] 피로스가 없다고 해서 왜 이렇게 상황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은 여러가지이나, 기본적으로 남부 이탈리아 지역과 로마 공화국 사이에는 원래 그 정도로 세력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애초 자신들이 가진 힘 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어서 해외의 원군을 불러온 것이 아니었겠는가? 거기다 피로스는 혼자서 시칠리아로 건너갔던 것이 아니다. 아피아노스에 의하면, 전투 코끼리에 기병 8천명을 데리고 갔다. 이는 안그래도 손실이 쌓여있던 연합군쪽의 전력을 더욱 악화시켰을 것이다.

삼니움인들은 이제 피로스에게 원한까지 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피로스는 그들을 이용만 하고 내팽개친 셈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로스에게 다시 기대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이 있는가? 절박한 호소가 이번에는 시칠리아로 날아갔다.


삼니움과 타렌툼인들은 피로스에게 편지를 보내서 도움을 간청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영토에서 내쫓겼고,
도시에서 농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Plut. Pyrrh. 23.5)



사실 이 즈음, 피로스의 시칠리아 원정도 엉망이 되고 있었다. 전쟁 초기에 그는 카르타고군을 밀어붙이며 시칠리아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강력하게 징발을 실시하자 시칠리아인들은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음모 의혹과 배신이 잇따랐다. 시칠리아인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계속 하거나, 혹은 시칠리아의 지배자 노릇을 더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던 와중에 이탈리아에서 그를 찾는 호소가 들려왔고,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이것은 그에게 시칠리아를 떠날 핑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거의 3년만에, 그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카르타고 함대는 피로스가 무사히 항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피로스의 배 가운데 70척이 침몰했고, 나머지도 대부분 대파되어 고작 12척만이 무사했다고 한다.







[1] Diod. 22.8.1. 피로스는 기원전 280년 초, 아직 봄이 되지 않았을 때에 에페이로스를 출발했으므로, 2년 4개월의 시간을 더하면 시칠리아행은 기원전 278년 봄이나 초여름의 일이 된다.

[2] "케라우노스(Κεραυνός)" 는 "번개" 라는 뜻.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는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이다. 리시마코스의 궁정에 있다가, 그가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승리자")에게 패하여 죽자 케라우노스는 셀레우코스를 암살한 뒤 돌아와 마케도니아의 왕권을 확보했다.

[3] 조나라스(8.5)에 의하면 피로스는 에페이로스로 사람을 보내서 병사와 자금을 더 가져오려 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의 기록(Pyrrh. 21.10)은 그마저도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4] 이 그리스 도시들의 이탈이나 함락 사건은 연조의 오류라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기록들 사이에 일관된 맥락이 발견되기도 한다. Petros Garoufalias, 『Pyrrhus, King of Epirus』(English Translation), Stacey International(1979) p412-413 참조. 

[5]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는 당시에 뛰어난 장군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하는 인물인데, 동시에 탐욕으로도 악평이 자자했다. 그는 나중에 은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혐의를 받아 파브리키우스에 의해 원로원에서 제명되는 불명예를 당했다. 덧붙여, 이 사람이 바로 독재자 술라의 선조이다.(Plut. Sull. 1.1)

[6] 파스티의 개선식 목록에는 기원전 278년부터 276년 사이에 재임한 세 명의 집정관이 개선식을 거행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1)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루카니아, 브루티움, 타렌툼, 삼니움에 대한 승리를 기념. 기원전 278년 12월.
(2) 가이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부불쿠스, 루카니와 브루티움에 대한 승리를 기념 기원전 276년 1월.
(3)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삼니움, 루카니아, 브루티움에 대한 승리를 기념 기원전 27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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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행인1 2011/02/20 20:05 # 답글

    꿈의 스케일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실제 행동은 갈팡질팡한다는 소리를 들을만 하군요.
  • Shaw 2011/02/20 21:39 #

    다 성공했으면 제2의 알렉산드로스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 엘레시엘 2011/02/20 20:38 # 답글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이걸 운이 없다고 해야 할지 끈기가 없다고 해야 할지 참 -_-;;
  • Shaw 2011/02/20 21:41 #

    강력한 베이스가 없어서 그런지 역경이 닥쳐오면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서방에선 모험적 정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았음을 보여주는 예시일까요.
  • 시무언 2011/02/21 05:17 # 삭제 답글

    이랬다 저랬다 갈팡지팡... 이쯤되면 누구라도 망할것 같군요
  • Shaw 2011/02/21 20:41 #

    우직한 면이 부족했던 걸까요...
  • 스카라드 2011/02/21 11:51 # 삭제 답글

    피로스는 뭘 해도 제대로 일이 안 풀리는군요. 이쯤 되면 그에게 천하대제국을 창업할 자격이 없다는 것 같습니다.^^; 피로스는 그렇게 로마에 고전했으면서 로마 전선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않고 시칠리아로 갔으니 히로히토와콧수염 총통의 삽질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자꾸 대체역사의 가능성이 보여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피로스가 카르타고에게 로마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둘이서 힘을 함쳐서 로마를 격멸하고 이탈리아와시칠리아를 양분하는 것으로!!! (로마 기병에게 쫓겨다닌다.)
  • Shaw 2011/02/21 21:03 #

    결과론이긴 하지만, 피로스는 그냥 그리스쪽에 있었으면 더 좋은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들꽃향기 2011/02/21 16:33 # 답글

    그의 제국 구상 자체로 본다면 둘도없는 기회이지만, '순차'로 본다면 역시나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행동인 것 같네요 ㄷㄷ;; 물론 피로스 본인으로서는 이런 기회가 없겠다고 보았겠지만...본인이 일전에 일단 이탈리아를 풍요의 땅 운운 하면서 키포인트로 생각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기모순적이기까지 합니다. ㄷㄷ
  • Shaw 2011/02/21 21:25 #

    기원전 278년쯤엔 피로스가 좀 상황이 몰렸던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상하게 피로스는 자꾸 그렇게 몰리지요;;) 뭐 개인으로 보면 한 몇년 시칠리아 왕 노릇도 했으니 그럭저럭 나쁠건 없는지도 모르지만 정복하고 제국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던거라면 대실패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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