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후예들 (14) - 승자는 혼자다. 달려라 공화국


피로스 전쟁 ⑩

 




피로스는 떠났지만, 남부 이탈리아에서 전쟁은 얼마간 더 계속되었다. 기원전 274년에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는 루카니아인들에게 또 승리했고, 그 다음 해에는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카니나가 루카니아, 삼니움, 브루티움인들을 다시 격파했다. '거의 모든 결판'은 기원전 272년에 났다. 이 해에 삼니움은 끝내 로마 공화국에 굴복했고, 비슷한 시기에 루카니아와 브루티움 지역 역시 항복했던 것 같다. 피로스의 명령을 받고 타렌툼을 지키던 밀론도 자신과 부하들의 안전한 귀국을 조건으로 요새를 공화국 군에 넘김으로써 곧 타렌툼도 함락되었다. 남은 지역들인 레기온칼라브리아에 대한 최후 정복은 기원전 266년까지 이어졌다.

한편 피로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마치 상황이 좋아지면 이탈리아로 돌아올듯이 수비병과 왕자 한 명을 남겨두고 떠났지만, 그런 상황은 결국 찾아오지 않았다. 귀국한 그는 또다시 마케도니아의 왕좌와 그리스의 패권을 노린 모험에 착수했고, 오히려 기원전 273년에는 타렌툼으로부터 아들과 장교들을 불러들였다. 피로스는 단시간 내에 마케도니아의 대부분과 테살리아를 정복했고, 안티고노스 고나타스를 거의 절망적인 지경에까지 몰아넣었다.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서 달성하지 못했던 제국의 꿈이 그리스에서 곧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원전 272년에, 피로스의 운명은 다시 한번 전환되었다. 아직 마케도니아의 정복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이번에는 펠로폰네노스 반도로 진격했다가 스파르타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일단 물러나 그 지방을 약탈하고 다니던 피로스는 아르고스에서 안티고노스 고나타스의 재건된 군대와 마주쳤고, 대치중에 전사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모험왕은 시가전 도중에 어떤 아르고스인이 건물 위에서 던진 기와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고, 그 틈을 노려 달려온 안티고노스의 병사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1]


안티고노스 고나타스. 디아도코이 시대에 온갖 문제의 근원과도 같았던 안티고노스 가문은
피로스의 사후 마침내 마케도니아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피로스는 일평생 여러 나라, 많은 군주들과 싸워서 성공적인 전과를 거두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당대 최고 수준의 탁월한 무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이내 전투 외적인 면에서의 실패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었다. 피로스가 이탈리아에 와서 수행한 전역만 따로 떼어서 보자면, 그 과정과 전과가 전반적으로 불분명하다.


피로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식의 모험 정복 군주에 매우 가까운 인물
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렉산드로스처럼 대제국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퇴장해 버린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비교적 명백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로마 공화국은 피로스의 동맹을 맺었던 적들을 모두 격파했고,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장악했다. 이탈리아의 넓이와 인구, 생산력, 시칠리아나 아프리카는 물론 그리스와도 가까운 지리적인 위치를 생각해 볼 때, 이 지역이 한 국가의 세력권에 들어갔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피로스 전쟁(기원전 280 ~ 기원전275)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그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아피아노스는 피로스 전쟁을 『삼니움 전쟁기』에 포함시켰고, 플로루스「타렌툼 전쟁」의 한 부분으로 서술했다. 긴 시간 범위에서 보면 그러한 편집 방식에는 합리적인 면이 있다. 피로스 전쟁은, 제 1차 삼니움 전쟁으로부터 시작하면 거의 80년에 걸친 로마 공화국의 이탈리아 정복 과정에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위치한다. 여기에서 피로스는 로마와 타렌툼간의 전쟁에서 타렌툼쪽의 원군으로 초빙되어 왔던 것이며, 그 싸움의 최초 당사자는 아니었다.

기원전 3세기가 시작될 무렵,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할 의도를 공화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갖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타렌툼과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공화국은 여러개의 그리스계 도시들을 보호국으로 삼아 남부 이탈리아의 문제에 관여하고 있었다. 꼭 타렌툼이 피로스를 초빙해 왔기 때문에 전쟁이 확대되어 남부 이탈리아 전체의 운명을 건 싸움이 되어 버렸다고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공화국은 그리스에서 온 이 무시무시한 전쟁 전문가와의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승리를 손에 넣었다. 로마인들은 또다시 '점진적으로' 강적을 물리쳤다. 전투에서는 설령 계속 패하더라도 끝내는 역전하고 이겨버리는 이 놀라운 국가는 드디어 서부 지중해의 일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패배한 적들의 영토 일부는 공유지로 몰수되기도 했고, 많은 전리품과 포로가 로마인들의 재산을 늘려주었다.[2]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 전쟁의 최종 결산 가운데 이탈리아 반도 전역의 정복보다 더 큰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273년,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보낸 사절이 로마에 도착했다. 이는 피로스를 물리친 후 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가 의심하기에,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피로스의 이탈리아 원정을 여러 면으로 지원했던 정황이 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피로스가 밀려나자 빨리 우호 사절을 보내서 자신의 지난 행동을 덮으려고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3]

그렇게 멀리 있는 나라에까지 아직 관여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의 주인은 이제 더 넓은 육지와 바다를 노려보았다. 피로스에 대항해서 카르타고와는 동맹을 맺었었지만, 그 피로스가 쫓겨나고 또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이 동맹의 효력도 사라졌다. 불가해하고 수상쩍은 마찰도 있었다. 공화국 군대가 타렌툼을 공략하던 그 때, 카르타고의 함대가 타렌툼의 앞바다에 나타났었던 것이다. 동맹인 공화국을 도우려고 왔던 것은 결코 아니었던 모양이다.[4] 로마인들은 나중에 이를 조약 위반으로 간주했다. 두 나라 사이에는 크고 풍요로운 시칠리아가 가로놓여 있었다. 특별한 외부의 개입 가능성도 차단된 이상 이 섬을 두고 공화국과 카르타고가 충돌하는 것은 거의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공화국이 이탈리아를 평정한지 불과 2년 뒤,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우덱스가 이끄는 군대가 시칠리아로 건너갔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일찍이 시칠리아를 떠나면서 피로스는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카르타고와 로마인들에게 좋은 싸움터를 남겨주고 가는군." 

그런 통찰력을 자신의 사업에서 발휘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것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문제가 많았던 한 시대가 대강 마무리되었다. 헬레니즘 세계는 정립되었고, 서부 지중해에서는 당분간 로마 공화국과 카르타고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게 된다.










[1] Plut. Pyrrh. 34.

[2] DionHal. AR. 20.15., Zonar. 8.6., Florus. 1.13.26-28.

[3] N. G. L. Hammond 「Which Ptolemy Gave Troops and Stood as Protector of Pyrrhus' Kingdom?」,『Historia: Zeitschrift für Alte Geschichte』, Vol. 37, No. 4 (4th Qtr., 1988), pp. 405-413 을 참조.

[4] Zonar. 8.6., Livy: Periochae 14.

 



덧글

  • Jes 2011/03/06 17:26 # 답글

    전투에선 능했으나 전쟁에선 형편 없었군요. Pyhrric Victory... 아, 그런데 뭔가 안타깝긴 합니다. 이 사람... 참 호남인데 말이죠.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겠죠?
  • Shaw 2011/03/06 20:41 #

    피로스의 운명은 아르고스에서 끝났습니다만, 이 사람에 관한 포스팅은 몇 개 더 할 생각입니다.
  • 파란바람 2011/03/06 18:12 # 답글

    삼국지 강유하고 이미지가 겹치는 것 같습니다. 능력은 있는데 결과는..
  • Shaw 2011/03/06 21:13 #

    알렉산드로스가 되기에는 적들의 집념도 너무 강했던가 봅니다.
  • 2011/03/06 23: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스카라드 2011/03/07 10:07 # 삭제 답글

    '남 좋은 일만 시킨다'라는 격언이 정말로 피로스에게 어울립니다. 뭐하나 제대로 마무리 하지 않고 다른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망하기 좋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는군요. 일개 촌부에게는 천하제패를 노리는 제왕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는 만고의 진리. 자꾸 피로스가 한심하고 @@같이 보여집니다. 저런 주제에 무슨 천하제패? 차리리 위대한 군왕 휘하에서 일개 장수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았을겁니다.

    피로스는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 아니라 명령을 받는 입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로마만 강하게 키워졌군요. 나나미 교주의 무한로마 사랑이 시작되는 카르타고 전쟁이 시작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착찹해옵니다. 나나미 교주는 닥치고 로마가 선량한 피해자?라고 흑색선전을 하시니....--;
  • Shaw 2011/03/08 13:26 #

    이렇게 끝까지 오고 보면 피로스는 너무 여기 저기 손을 막 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 들꽃향기 2011/03/08 00:28 # 답글

    피로스의 마지막 한마디는 피로스 평생의 유일한 명찰(...)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ㄷㄷ

    사실 마케도니아에 대한 그의 원정은, 그의 제국건설 발언(?)이 서부에서의 패권 확립을 우선으로 하고 차후로 이뤄지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로마에 대한 패배를 본인이 스스로 행동으로 인정한 샘이나 마찬가지네요.....ㄷㄷ 그리고 그의 다급함(?)도 느껴진다면 지나친 망상인것 같습니다. ㄷㄷ
  • Shaw 2011/03/08 13:28 #

    마치 픽션의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한데가 있는 일대기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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