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스 전쟁/정리 2] 제국의 야망. 전쟁의 기록. 달려라 공화국






피로스는 왜 이탈리아에 왔는가? 그것은 물론, 로마 공화국과 전쟁 상태에 돌입한 타렌툼 사람들이 그를 "용병대장"으로 초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로스가 그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더라면 이어지는 그의 시칠리아 원정도 없었을 것이고, 타렌툼인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친 로마파가 정권을 잡아 화의를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http://shaw.egloos.com/3563214)


고대의 작가들은 피로스의 의도에 대해서 다양한 설명을 남겼다.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피로스는 이탈리아의 주인이 되기를 희망했고, 유명한 친척 왕들, 즉 에페이로스의 알렉산드로스나, 저 페르시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도 자신이 필적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한편 파우사니아스는 피로스가 이전에 코르키라섬을 정복할 때 타렌툼인들의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즉, 도의상 은혜를 갚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이탈리아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끌렸고, 간절히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무시해 버리기 어려웠다는데 무게를 두었다. 또한 로마인들의 선조가 트로이 사람들이고 자신의 조상은 아킬레우스라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이를 길조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카시우스 디오에 따르면 피로스는 그 전부터 시칠리아에 관심이 있었다. 타렌툼인들이 도움을 호소해오자 피로스는 이를 그리스인들도 돕고, 로마가 화근이 되기 전에 전에 미리 손을 봐 줄 좋은 기회로 여겼다고 한다. 아울러, 도도나에서 내려진 애매모호한 신탁을 길조로 해석했다는 것이다.(http://shaw.egloos.com/3559801)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유명하고, 또 거대한 의도는 플루타르코스의 글에서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피로스는 측근 키네아스와 나눈 대화에서 이탈리아, 시칠리아, 나아가 카르타고까지 정복하여 지중해 중앙에 일대 제국을 건설할 뜻을 갖고 있었음을 내비쳤다. 게다가 이 제국의 힘을 바탕으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제압할 복안도 암시된다.(http://shaw.egloos.com/3560681) 그런 이야기가 진실인지, 후세 사람들의 창작인지 판단하기란 어렵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의 자료 가운데 이 문제에 있어서 피로스의 입장을 성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피로스가 꿈꾼 서방 제국?(개략도). 이러한 세력을 구축한 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제압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200년(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시작) 로마 공화국이 장악한 지역. 위 그림과 비교해 보자. 이 시기
로마의 "서방 제국"은 아직 착수단계였고,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키살피나의 상황도 유동적이었다.

  


피로스의 제국 건설 의도는 정말 존재했는가? 이와 관련해서 흥미를 끄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페르디카스가 발견해서 공개했다는 대왕의 '향후 계획'이다.[1] 여기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시리아와 페니키아 등지에서 1천척의 대함대를 만들어 카르타고를 공격하고, 나아가 아프리카와 이베리아-시칠리아에 이르는 지역의 해안을 모두 정복하며, 북아프리카의 해안을 따라 지브롤터 해협까지 이르는 도로를 개통하려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 알렉산드로스'가 생각할 법한 계획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으나, 이 이야기 역시 진위가 불분명하기는 하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할만한 거리는 던져주는데, 일단 알렉산드로스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기는 했지만 당시 그리스인의 관념 안에서 보아도 '전세계'를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지중해의 서쪽 절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왕의 위업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서방 대제국'의 아이디어가 일찍부터 제기되었다고 해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아이디어가 정말로 피로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어떤지는 몹시 불분명하다. 이탈리아 원정을 준비하면서, 피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로부터 병사 9천명과 코끼리 50마리2년 기한으로 빌렸다.(http://shaw.egloos.com/3582376) 이는 피로스가 그 원정이 비교적 단기간 내에 끝날 것으로 내다보았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전체를 정복할 의도는 없었던게 아닐까?[2]



미완의 제국? 알렉산드로스는 기존에 정복한 제국에 더하여 서방에서 거대한 정복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그의
사후에 제기되었다. 대강 그림에서 청록색으로 표시된 아프리카와 이베리아, 이탈리아 해안이 그 대상이었을 것이다.

 


피로스의 의도도 그렇지만, 그가 이탈리아에서 수행한 전쟁도 전반적으로 실체가 확실치 않다. 이 문제는 벌써 기원전 2세기에 폴리비오스도 지적했던 것이다.(http://shaw.egloos.com/3577889) 3번의 주요 전투는 양측 병력이 불분명하거나 전과가 불분명하거나 혹은 둘 다이다. 그 중 두번째인 아우스쿨룸 전투는 어느 편이 승리자인지, 마지막 전투는 심지어 어디서 일어났는지도 기록이 엇갈린다. 피로스가 본대를 이끌고 참가하지 않은 전투들도 매우 많았겠지만, 그 내역들도 잘 알 수 없다. 어쩐지 로마쪽 전승으로부터 기원한 것 같은 디오니시오스의 기록은 전반적으로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전투에 참가한 병력이 서로 7~8만씩 되었다던가, 1만 수천명이 전사했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것보다 그럴듯한 다른 전승도 남아있기에 다행이지, 이런 식의 기록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졌더라면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규모를 합리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나, 기원전 3세기 초에 이미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야전에 내보낼 수 있었던 로마의 저력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열심히 설명을 만들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의 전승 속에서 피로스 전쟁은 준수한 승리였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코끼리에 놀란 것도 있어서 조금 고전했지만 곧 반격에 성공했고, 결국 피로스의 군대를 대파하여 쫓아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개는 처음 두번의 회전은 이긴 쪽에도 상당한 출혈을 동반한 피로스의 승리로, 마지막 회전은 어영부영하거나 로마의 근소한 승리 정도로 정리한다. 로마인들은 피로스를 전장에서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거점과 동맹국 등 밑천을 관리하고 유지하는데 우세를 보였던 것 같다. 세번의 대전투가 전부 라티움 밖에서 일어났고, 피로스의 전진 시도는 모두 돈좌되었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공화국의 최종적인 승리를 필연으로 만드는지는 의문이다. 피로스는 중간에 갑자기 시칠리아로 떠나버렸고, 그가 없는 3년동안 로마 공화국은 피로스의 이탈리아 내 동맹자들의 전쟁 역량을 성공적으로 파괴해 나갔다.(http://shaw.egloos.com/3580493) 결국 피로스는 끈기있게 싸웠다면 어찌될지 몰랐던 전쟁을 판단 착오로 날려버렸던 것은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계 도시국가들과, 삼니움인과 루카니아인 등의 내륙 거주민들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해 보자.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피로스 이상으로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었고, 모험왕이 이끌었던 병력과 보급 물자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합심하여 전력을 다해 '피로스의' 전쟁에 참여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남부 이탈리아는 통합되어있지 않았다. 타렌툼이 그리스계 도시들 사이에는 맹주격인 지위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 지도력도 상당부분 흔들린 상태였던 것 같다. 전쟁 전에 투리이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에서는 위기가 닥쳐와도 일사불란한 행동이 기대되기 어렵다. 사실 로마를 정말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지도 의문이다.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도시국가들과 루카니아, 브루티움의 내륙 주민들은 자주 분쟁을 일으켰다. 멀리 있는 로마와 싸우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사이가 나쁜 자들과 손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그 전쟁에서 그리스계 도시들의 수수께끼처럼 '유약한' 태도를 이해하는데 일정한 단서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3











[1] Diod. 18.4.4.

[2] 그러나 이같은 논의는 물론, 결정적이지 않다. 9천명과 코끼리 50마리라는 대여 병력 규모는 과장된 것일 수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현지인들을 모집하여 빌린 병력을 돌려주고도 충분히 정복을 계속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3] 이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은 Kathryn Lomas, 『Rome and the Western Greeks, 350 BC-AD 200』, Routledge(199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덧글

  • 행인1 2011/03/14 23:35 # 답글

    피로스도이탈리아 반도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구상 정도는 있었겠지만 중간에 시칠리아로 외도(?)하는 모습 등으로 미루어보아서는 아무래도 중장기적인 계획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 Shaw 2011/03/15 12:07 #

    그리스계 도시들 사이에서는 인심을 얻어 맹주로 군림하고 그외 이민족은 때려잡는 스토리였던 것도 같은데...
  • 2011/03/15 00: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haw 2011/03/15 12:27 #

    피로스가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의식했다고 한다면, '잽싸게'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강박도 갖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ㄷㄷㄷ) 그런 거라면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것이긴 한데 증명되는 바는 아니군요;;
  • 시무언 2011/03/15 01:30 # 삭제 답글

    장기적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군요
  • Shaw 2011/03/15 12:39 #

    그 점에서 공화정기 로마가 강점을 나타낸 경우가 많지요.
  • 스카라드 2011/03/15 07:11 # 삭제 답글

    뭐든지 대충대충 하다가 말다가,이런 식으로 대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결국은 실패합니다. 피로스를 보면 딱 그 모양입니다. 이 양반은 보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어이없어하겠군요. "그대가 과인을 뛰어넘겠다고. @@하지 말게나. 어느 군왕의 휘하에서 장수나 하면 어울리는 작자가 주제넘게 군왕이라니."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명색이 대제국을 창업하겠다는 정복자가 이리도 변덕이 심해서야. 히로히토와콧수염 총통와같은 부류입니다. 전술적인 분야에서는 몇배나 더 낫지만.^^; 어쨌든 로마 좋은 일만 해도 아주 미워집니다.
  • Shaw 2011/03/15 12:53 #

    1차 사료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편집 마술+모함질이 걸리기는 하는데, 피로스가 이탈리아에서 실패하고 돌아와서는 거의 바로 안티고노스 고나타스를 관광보내버립니다. 그런걸 보면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더라도, 정말 개인적으로 인내심이 부족했던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 긴가민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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