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은 "로마인들의 나라"와 공화국의 국유지.
노란색은 이탈리아 반도와 갈리아 키살피나의 동맹국들.
주황색은 보호국들의 영역.
빨간색은 속주 지역.
로마의 해외 영토는 보통 "속주"라고 부른다. 속주는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식민지와 가까운데, 당시에 식민지(혹은 식민시. colonia)라는 것은 모도시로부터 이주민을 내보내서 건설한 새로운 도시국가를 의미했고 따라서 고대의 개념으로 보면 속주는 식민지가 아니었다.
속주는 사실 로마 공화국에 병합된 영토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속주는 로마 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라 법적으로 '외국'이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팽창 과정에서 지중해 전역에 걸쳐 수백개나 되는 많은 속국들을 거느리게 된다. 이런 나라들은 대개 로마의 동맹국으로 불렸는데, 대체로 내부에서는 자치가 행해졌다. 어떤 곳에는 지위를 세습하는 왕가가 있었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주민들이 알아서 선거로 대표를 뽑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탈리아 반도의 절반 이상도 "로마인들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서는, 최고 통치 기구를 로마에서 인정치 않거나 혹은 해체해 버리고 정기적으로 고위 정무관을 파견하여 지배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곳들이 오늘날 "속주"라고 불린다. 속주(프로빈키아provincia)란 당시에는 특별히 지방 행정 구역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정무관의 담당 임무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국고는 감찰관(켄소르. 호구조사관이라고도 번역함)의 '프로빈키아' 였다. 즉, 프로빈키아는 딱히 어느 지역이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법무관 이상의 고위 정무관이 외국에 전쟁 지휘나 통치 관리 등을 위해 파견되면, 해당 외지가 포괄적으로 그 정무관의 '프로빈키아'가 된다.
로마가 정기적으로 고위 정무관을 파견하는 '외국'은 꽤 느린 속도로 증가했다. 처음에는 기원전 227년에 시칠리아 섬과 사르디니아-코르시카를 지배하기 위해 원래는 두 명이었던 법무관을 네 명으로 늘렸다. 다음으로는 기원전 197년에 두개의 히스파니아 속주(가까운 히스파니아와 먼 히스파니아)에 파견하기 위해 또 법무관 두명을 추가했다. 그 다음에는 기원전 146년에 구 카르타고 지역과 마케도니아 왕국 땅이 속주화되었다. 기원전 133년에는 아나톨리아 서부의 페르가몬 왕국이 로마에 유증되어 속주가 되었다. 7개의 속주가 개설되는데 90년이 넘게 시간이 걸렸다. 로마가 닥치는대로 외국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았다는 생각은 좀 널리 퍼져있기는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복속된 지역이 전부 속주가 되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속주가 늘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기간동안에는 로마가 팽창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공화국이 복속시킨 지역을 모두 속주로 만들지 않은 것은 관념상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속국들은 조약에 의해 로마가 필요할 때 병력을 제공하기도 하고, 세공을 바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별히 직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부분적으로는 정치 체제상의 이유도 존재했을 것 같다. 고위 정무관들은 이미 정해진 임무를 할당받고 있었으므로, 속주가 추가되면 그곳에 파견하기 위해 법무관 이상의 관직 수를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집정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유력한 인사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고, 따라서 정치적인 혼란이 초래될 위험이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참고
김창성, 「맥락적 접근을 활용한 로마 제국주의의 이해 맥락적 접근을 활용한 로마 제국주의의 이해」, 歷史敎育, Vol.101(2007)
김창성, 『로마 공화국과 이탈리아의 도시』 메이데이(2010)
신미숙, 「공화정기 로마의 제국주의」,『서양고대사강의』(한울아카데미, 1996) p355-395
차전환, 「로마 제국의 중앙과 지방」, 西洋史論, Vol.86(2005)




덧글
이미 로마에 대적할 외적 자체가 없다는 것 자체가 애석합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중세초기의 능력치라도 있었다면 좋았습니다만,레기온의 측면을 위협하는 팔라딘을 꿈꾸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