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후예들 (15) - "우리가 남이가" 달려라 공화국






 

1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기원전 263년(혹은 그 다음해인 기원전 262년), 시칠리아 북서부의 도시 세게스타가 카르타고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로마 공화국의 편에 가담해 왔다. 오늘날의 칼라타피미(Calatafimi)인 세게스타는 엘리미족 영역의 중심지로, 시칠리아 서부에서 중요한 도시였다.

그런 도시가 어째서 카르타고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로마 편으로 돌아섰을까? 아마도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가 크게 고려되었을 것이다. 전쟁 둘째 해에 공화국은 강력한 2개의 집정관군을 시칠리아에 보냈고, 그것을 본 많은 도시들이 카르타고를 버리고 로마 편에 붙었다.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그 수는 67개나 되었다고 한다. 시칠리아 최대 도시 국가인 시라쿠사도 로마와 화약을 맺고, 동맹국의 지위를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게스타 사람들이 유리해 보이는 쪽에 충성하기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런데 세게스타인들은 공화국 편에 가담하면서, 상당히 특이한 이유를 댔다. 그것은, '자신들과 로마인들은 똑같이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이기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세게스타인들은 그런 선언과 함께 카르타고인들(수비 병력이었을 것이다)을 죽이고, "큰형님"의 품으로 달려왔다.[1]


세게스타는 시칠리아 서쪽 내륙의 도시였다. 이 도시는 1차 포에니 전쟁 초반에 카르타고를 버리고 로마편에 가담했다.

 


트로이가 멸망한 후, 그 영웅 아이네이아스가 난민들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왔고 그들이 로마인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시칠리아의 도시 세게스타에도 그 비슷한 전설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베르길리우스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드』에서는 아이네이아스 일행이 최종 정착지인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도달하기 전에 시칠리아에도 들렀고 일부 사람들은 그곳에 남은 것으로 나온다. 그들은 토착인들과 힘을 합쳐 세게스타를 건설하게 된다.

독립된 두개의 건국담이 나중에 통합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아이네이아스의 이탈리아행 전설이 그런 줄거리를 갖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쨌건 이 사건은 상당히 재미있다. 트로이 전쟁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13~12세기로 생각되므로, 세게스타인이 실제로 로마인들과 같이 트로이 난민의 후손이라고 해도 벌써 천년 전에 갈라진 집단이 된다.



천년전의 인연도 외교적인 수사로 동원될 수 있는가? 그런 면에서는 이보다 훨씬 괴이해 보이는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기원전 237년으로 생각된다), 그리스 중서부의 아카르나니아 지방 사람들이 아이톨리아인을 물리쳐 달라고 로마에 요청해 왔다. 이에 응하여 원로원에서는 아이톨리아에 사절을 보내 아카르나니아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때 아이톨리아에 파견된 사절은 아카르나니아와 로마 사이의 인연을 설명하기를,

"아카르나니아는 그리스에서는 유일하게, 로마인의 선조인 트로이를 공격하던 그리스 연합군을 지원하지 않았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 아카르나니아인들이 로마에 탄원하면서 제기했던 것 같은데, 어차피 진실성은 알 수 없는 주장이다.[2] 공화국의 요구 자체도 묵살당해 버렸다.


아카르나니아와 아이톨리아의 위치. 아카르나니아는 에페이로스의 남쪽, 그리스 중서부에 있었다.

 


한편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셀레우코스 2세가 로마와 우호를 맺기를 희망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때 원로원은 이런 회답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와 동족인 일리움(옛 트로이) 사람들로부터 모든 공납 의무를 면제해 준다면 그대와 더불어 우의와 동맹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이 이야기는 다른 소스에는 나오지 않고, 황제가 되기 전에 역사학자였던 클라우디우스 게르마니쿠스가 한차례 언급한 적이 있어서 겨우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것이 로마인들의 일방적인 주장인지, 아니면 일리움 지방 사람들로부터 모종의 요청을 받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옛날의 트로이 지방과 공화국 사이의 전설적 인연이 현실의 외교 관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었다. 기원전 196년에는 트로아스(트로이가 있던 소아시아 서북의 비가 반도 일대)의 도시 람프사코스가 자신들이 로마인과 동족임을 강조하며 2차 마케도니아 전쟁 종결 조약에 한몫 끼려고 했던 것이다.


위에 소개한 에피소드들은 모두 고대의 기록에서 단편적으로만 언급되는 것들로, 사건의 심원한 배경은 물론 자체적인 신빙성도 확실치 않다.[3] 천년이나 지난 옛 선조들간의 인연이라는 낭만적인 테마와 관계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덜 낭만적인 현실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사건들이기도 하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명성 높은 무장이던 피로스 왕을 '집에 돌려 보내' 버리고,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자가 된 기원전 3세기 중엽 이래 로마 공화국은 국제적으로도 점점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곧 카르타고와 두번에 걸친 격렬한 전쟁끝에 시칠리아와 히스파니아를 차지했고, 서부 지중해 유일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해외의 세력들이 로마와 우의"amicitia"를 맺고 싶어했으며 또는 그 우의를 이용해서 자기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메사나인들은 카르타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공화국 군대를 시칠리아로 끌어들였고, 로도스페르가몬 왕국은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에 대항하기 위해 로마에 '초청장' 을 날렸다. 히스파니아에 로마가 개입하게 된 배후에도 마실리아인들의 그림자가 감지된다.[4] 그러한 시도들은 공화국이 이탈리아 반도 바깥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계기와 함께 "동맹국을 돕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라는 식의 명분을 제공했다.


비록 기원전 3세기 초에 피로스는 로마인들의 트로이 기원 전설을 "패배자의 후예" 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였던 모양이지만, 그 후 로마인들은 특별히 그러한 이야기를 굴욕적인 과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도 않고 조상의 원수인 그리스인들에게 역사적 반감을 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아이네이아스와 트로이인들의 장대한 여정은 지중해 곳곳에 전설적인 인연을 만들어 놓았고,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전통적인 중심부였던 동부 지역과 낯선 존재가 아님을 어필하는데 근거가 되어 준 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잘하면 트로이 전설은 로마가 다른 나라들과, 다른 나라들이 로마와 외교 관계를 가지면서 서로의 친밀함을 확인하는데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위 에피소드들의 사실성을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면, 여기서는 그런 정도의 측면만 생각하면서 넘어가고자 한다.







[1] 이 사건은 Zonar. 8. 9 와 Diod. 23.5 에서 언급되고 있다. 세게스타인들이 로마인들과 동족이라고 주장했다는 말은 조나라스의 글에서만 발견된다.

[2] 아카르나니아의 구원 요청은 Justin. 28.1 을 참고. 이와 함께 Strab. 10.2.25 의 기록에서는 아카르나니아인들이 언젠가 트로이 전쟁 시절의 옛 인연을 말하며 로마인들로부터 득을 보려 했던 정황이 제시되고 있다.

[3] 세 에피소드는 모두 E. S. Gruen, 『Studies in Greek culture and Roman policy』 , Berkeley(1996) 에서 소개한 것들이다. 국내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로는 차전환, 「로마인들이 키벨레 신을 받아들인 이유」, 『서양고대사연구』 Vol. 19(2006) 가 있다.

[4] 김창성, 「맥락적 접근을 활용한 로마 제국주의의 이해」, 『歷史敎育』Vol. 101(2007)






덧글

  • 행인1 2011/03/27 22:05 # 답글

    '외교'의 출발점이 되는 건국신화(?)로군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
  • Shaw 2011/03/28 21:50 #

    세상에 별일이 다 있지요.
  • 카니발 2011/03/28 00:36 # 답글

    위키리크스에서 나온 외교 문건들을 보면 '뭐 이런 사소한 거 가지고 외교를 했단 말인가..'싶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나름 비슷한 맥락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근데 원로원 아저씨들 그런 답변을 보내다니...--
  • Shaw 2011/03/28 21:56 #

    전후 맥락이 생략되어 그런지, 뭔가 요구 조건이 이상해 보이죠.^^
  • 시무언 2011/03/28 03:09 # 삭제 답글

    일단 뭐라 요구를 하면서 이유는 대야되는데 적당한게 없어서 신화를 언급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 위의 원로원 사람들도 마땅한 구실이 쉬이 생각 안나서 그런것도 같고.
  • Shaw 2011/03/28 21:57 #

    저런 얘기는 외교에서 겉치레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셀시아 2011/03/28 04:35 # 답글

    시칠리아는 산 뿐이라는데 이외로 많은 마을(도시)들이 있었나 보네요. 고대에는 시칠리아가 꽤 번성했었나 봅니다.
  • JOSH 2011/03/28 09:28 #

    오.. 산이 많은가 보군요.
    그런데 로마시대에는 시칠리아가 대표적인 밀 산지로 농업이 흥했었나 봅니다.
  • Shaw 2011/03/28 21:59 #

    시칠리아 해안은 일찍부터 그리스 이주민들이 많이 건너와서 도시 문명이 발달했던 곳입니다. 저 당시면 전성기는 지난 다음이지만 그래도 "부유하고, 인구가 많다" 는 평가가 발견되지요.
  • 스카라드 2011/03/28 08:29 # 삭제 답글

    자세히 보면 카르타고는 1차 포에니 전쟁때부터 다 말아먹고 들어가는군요. 23년이나 질질 끌었으니... 이미 끝장이 났다고 봐야겠지요.^^; 고대 지중해 시대에도 재야사학?이 있었나 봅니다. 트로이의 후예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그런 것을 가지고 개드립을 치다니.(--) 그래서 재야사학은 시대에 상관없이 나타는 불멸의 진리??
  • Shaw 2011/03/28 22:01 #

    당시에는 식자층에서도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봅니다. 거의 정설처럼 취급되던 것 같군요. 사실 그때는 검증해 볼 방법이 있었을지 어떨지도 모르겠군요. ^^;;;
  • 들꽃향기 2011/03/28 13:08 # 답글

    어찌본다면 저런 기원신화 자체가 로마인들 스스로도 지중해 세계의 일원임을 외교적으로 표방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겠군요. ㄷㄷ 근데 로마 공화국이 강해져감에 따라 친척들(?)이 달라붙는건, 누가 성공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달라붙는 세태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
  • Shaw 2011/03/28 23:55 #

    그냥 오디세우스가 세운 그리스계 도시라고 하는 편이 더 친근했을텐데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아마 이 전승은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나저나 하필이면 로마인들이 친척이라니...
  • 나츠메 2011/04/03 23:58 # 답글

    고대 지중해세계의 외교적 수사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한데, 그 외교적 수사가 실용적이었는가는 또 별개의 문제.....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
  • Shaw 2011/04/04 01:28 #

    메이저 파워가 아닌 세력들과 엮인 경우가 많아서, 기록도 단편적이고 미묘한 얘기들입니다. 하지만 뭐, 저런 종류의 드립도 통할 때나 통하고, 안 통할 때는 전혀 안 먹히는 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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