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후예들 (16) - 오랜만입니다, 그리스의 여러분. 달려라 공화국






기원전 2세기 초의 어느 해,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라는 로마의 지체높은 귀족이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 자기가 쓰던 은방패를 봉납했다. 그 방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1]

오, 제우스의 아드님들이여, 뛰어난 승마술의 소유자, 스파르타의 군주 틴다리다이[2]들이시여. 여기에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자 그리스에 자유를 찾아준 티투스가 가장 귀중한 공물을 드립니다.

'그리스의 자유'란 무슨 말일까?

한니발을 무너뜨리고 카르타고에게 승리를 거둔 직후인 기원전 190년대, 로마 공화국은 본격적으로 그리스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공화국은 영토 확장과 정복의 기치를 내세우고 그리스땅에 상륙했던 것이 아니다. 로마인들은 그 대신에, 마케도니아의 압제로부터 그리스를 해방시킨다는 대의를 외치며 헬라스 땅의 백성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3]

전설과 현실이 혼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이러니에 가까웠다. 로마인의 선조들은 천 수백년 전,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패망한 모도시 트로이를 떠나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기나긴 방랑 끝에 라티움에 이르렀다고 했다. 다시말해 그리스인은 그들을 머나먼 고향으로부터 몰아낸 원수였다. 그런데 이제 그 트로이의 후예들이 갑자기 그리스의 자유와 독립, 대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아드리아해를 건너왔던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특별히 이 일에 마음속으로 미신적인 공포를 느꼈을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이로부터 불과 반세기 후에 모든 헬레니즘 세계가 그 이방의 공화국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고 내다본 그리스은 거의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200년-기원전 196년에 걸쳐서 일어난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로마사에서 대단히 중요하면서, 또 특이한 사건이었다. 명칭대로, 그 전쟁에서 로마 공화국은 마케도니아 왕국을 상대로 싸웠다. 안티고노스 왕조가 지배하는 마케도니아 왕국은 오랫동안 그리스 지역의 지배자로 군림해 왔으나, 마침내 기원전 197년에 공화국군이 테살리아의 키노스케팔라이("개의 머리들"이라는 뜻) 라는 곳 근처의 구릉지대에서 마케도니아 왕이 직접 이끌던 군대를 대파함으로써 그 패권은 사실상 종식되었다. 무사히 달아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패배[4]를 당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는 화약을 간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쟁의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를 포함한다. 애초에, 공화국은 무엇때문에 바다 건너 그리스까지 군대를 보내서 전쟁을 벌였던 것인가? 그 당시는 아직 2차 포에니 전쟁이 종결되고 채 몇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후 복구를 위해서는, 최소한 동쪽에 있는 또 다른 강대국과 새로운 싸움에 돌입하는 것 말고 다른 할일이 많았을 것이다.

종전 처리도 기묘했다. 공화국은 패배하여 비틀거리는 마케도니아 왕국을 멸망시키지 않았을 뿐더러, 필리포스 왕을 퇴위시키지도 않았다. 로마편에 가담해서 키노스케팔라이에서 같이 싸웠던 아이톨리아인들이 필리포스 제거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승전 지휘관인 로마의 집정관 권한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는 고상한 도덕적 이유와 현실적인 이유를 같이 거론하며 이를 거절했다.

"무기를 든 적을 상대로는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만 하지만, 훌륭한 사람이라면 이미 패배한 상대는 관용으로 대합니다. 여러분들은 마케도니아의 왕이 그리스의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만약 그 나라를 파괴해 버린다면, 트라키아인이나 일리리아인, 갈리아인 같은 흉폭한 야만족들이 마케도니아로 쏟아져 내려와, 곧 그리스로 몰려들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위협을 제거하는데 열중해서 더 거대하고 심각한 위협을 불러들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5]

그리하여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지위가 훼손되기는 했어도 마케도니아는 여전히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세력 하에 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이제 새로운 상전(로마)의 손에 넘겨진 셈이었지만, 공화국은 놀랍게도 이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기원전 196년에 코린트에서 열린 이스트미아 경기대회에서, 플라미니누스는 그리스 각지가 이제 자치권을 회복했으며 로마는 이들 지역에 주둔군도 배치하지 않을 것이고 배상이나 연공의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들은 관중들은 너무 기뻐서 경기대회 같은 것은 제쳐두고 몰려나와 플라미니누스에게 환호를 보냈으며, "소리가 바다에서까지 들릴 정도였다."[6] 경기장은 흥분과 환희의 도가니가 되었고 밤까지 축제가 이어졌다.



기원전 200년 경의 그리스. 마케도니아 왕국(황색)이 그리스의 대세를 점유한 가운데, 도시국가 연합인 아이톨리아 동맹(적색)
아카이아 동맹(녹색)이 결성되어 있었다. 아이톨리아 동맹은 전반적으로 마케도니아에 적대적이었는데, 이들은 로마와 연
합하게 된다. 아카이아 동맹은 처음에는 마케도니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기원전 198년에는 역시 로마편에 가담했다.
아래 그림에 주황색으로 덧칠된 지역은 기원전 196년에 이스트미아 제전에서 자유롭다고 언명된 곳들을 대강 표시한 것이다.




이 '그리스 해방' 사건은 그리스 세계에 깊고도 넓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로마 공화국과 특히 사령관 티투스 플라미니누스의 위상이 대단히 높아졌다. 대체 이방인인 로마인들이 마케도니아의 억압을 받는 그리스인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고, 공짜로 해방시켜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그리스인들은 로마에 찬사와 감사를 보냈고, 플라미니누스는 구원자로 떠받들려졌다. 나중의 일인것 같지만, 심지어 어떤 도시에서는 플라미니누스를 아예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섬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해방은 정말 공짜로 이루어진 것인지, 그리스인들이 기대하는 "자유"와 로마인들이 그리스에 주려고 생각한 "자유"가 과연 같은 것인지는 당장 확인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역사상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이 문제의 대답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명해질 터였다. 이스트미아 선언이 모든 그리스인들을 만족시킨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필리포스를 쫓아내지 못한데다 그 기회를 틈탄 세력 확장 기도도 저지당한 아이톨리아인들은 불만이 대단했다. 그리고 당시 스파르타나비스 왕은 아르고스를 점령한 상태였는데, 필리포스의 위협이 사라지자 이 문제가 그리스 내에서 수위급의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아르고스 역시 "해방"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나비스 왕의 지배를 받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기원전 195년, 플라미니누스는 그리스 전역의 대표들을 코린트에 소집하여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아르고스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톨리아 대표들은 "아르고스 핑계를 대며 계속 그리스에 있지 말고, 로마인들은 얼른 이탈리아로 돌아가라"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는 전반적인 항의를 받았고, 아카이아 대표가 나서서 나비스 왕과 아이톨리아인들을 격하게 비난하는 한편 로마인들이 아르고스를 나비스로부터 구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7]  


그리하여 공화국의 다음 목표는 스파르타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의 요청과 동의를 받아, "포악한 나비스"의 압제로부터 아르고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플라미니누스는 다시 군대를 이동시켰다. 아르골리스와 라코니아 등, 트로이 전쟁을 촉발시켰던 미녀 헬레네와 당시 그리스 연합군의 수장이었다고 하는 뮈케나이 왕 아가멤논 같은 사람들의 전설이 깃든 오래된 고장으로 진격하면서 그리스 문화에 해박했던 플라미니누스는 개인적으로 소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런 문제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기원전 198년 이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문제를 담당해온 그는, 당시
로마에서 대표적인 친(親)그리스주의자였다. 플라미니누스는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온화하고 호감가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이는 그리스에서 활약할 때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 되었다.






[1] Plut. Flam. 12.6

[2] 틴다리다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쌍둥이 영웅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별자리 중에서 쌍둥이 자리와 결부되는 영웅들(이 경우에는 半神)로 유명하다.

[3]
프리츠 하이켈하임 외,『로마사』(김덕수 역), 현대지성사(1999) p231

[4]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의 피해는 전사가 8천명, 포로가 5천명이었다. 그것은 마케도니아가 배치했던 야전군의 50%에 달하는 것이었다. 한편 로마 공화국쪽의 피해는 700명 정도였다고 한다.

[5] 플라미니누스의 답변은 Livy. 33.12 에서. "고상한 도덕적 이유" 라는 표현은 신미숙, 「공화정기 로마의 제국주의」,『서양고대사강의』(한울아카데미, 1996) p377 에서 가져왔다.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기원전 197년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종결되었으나, 원로원의 평화조약 최종 조인은 다음해인 기원전 196년에 이루어졌다.

[6] Plut. Flam. 10.5. 한편 10.6 에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너무 커서 하늘을 날던 새가 떨어졌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7] Livy. 3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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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th fear :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의 개전 원인에 대해서. 2011-04-03 21:08:45 #

    ... 이것은 그 전쟁의 전개 과정과 결과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의 그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무엇때문에 일어났던 것인가? 이에 관한 이야기는 분량 관계로 지난 글(http://shaw.egloos.com/3616013) 에서 생략하였으므로, 이번에 따로 소개하는 글을 만들까 한다.우선 마케도니아는 당시에 로마의 영토나 보호령을 침입하지 않았으므로, 마케도니아와 로마 사 ... more

덧글

  • 맹꽁이서당 2011/04/02 17:45 # 답글

    저 때의 아테네는 아이톨리아나 아카이아 동맹 어디든 참가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색칠이 없는걸 보니...
    로마군에 대한 아테네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 Shaw 2011/04/02 18:47 #

    아테네는 로도스, 페르가몬, 아이톨리아 동맹과 마찬가지로 로마에 사절을 보내서 마케도니아를 무찔러 달라고 호소한 세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로마군을 그리스에 끌어들인데 일부 원인을 제공했던 셈이지요. 코린트 회의에서도 아테네 대표는 아이톨리아 측을 비난하고 스파르타 공격을 지지하는 발언을 합니다.
  • 행인1 2011/04/02 20:49 # 답글

    '자유'라는 단어처럼 내세우기 좋으면서 온갖 뜻이 들어가 있는 단어도 드물겁니다.
  • Shaw 2011/04/02 21:44 #

    저시기, 특히 그리스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인 구호로 쓰였을 겁니다.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흔한 구호이긴 한데, 그걸 일종의 바르바로이(...)인 로마인들이 외치면서 들어왔다는게 또 재미있지요.
  • 진성당거사 2011/04/02 22:56 # 답글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 Shaw 2011/04/03 00:43 #

    감사합니다.
  • 시무언 2011/04/03 05:08 # 삭제 답글

    어찌보면 마케도니아도 그리스인들 입장에선 바르바로이였을테니(알렉산드로스 이후 어땠는지는 전 잘 모르지만요) 그리스 애들은 이이제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나저나 방패에 새겨진 그 말이라는거 참 아이러니하네요. 신화를 생각하면 상당히 비꼬는것 같기도 하고.
  • Shaw 2011/04/03 21:14 #

    아마 좀 이용해 보려는 생각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는 배후 음모의 분위기도 있긴 하지요.^^
  • 카니발 2011/04/03 11:03 # 답글

    분명 저 시기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한텐 전쟁광 야만인들이었을텐데 일단 자유라는 구호 앞에선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던 걸까요[...]
  • Shaw 2011/04/03 21:18 #

    플라미니누스가 잘 해 낸 면이 있고, 그리스 대의의 수호자처럼 활동하던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1세가 돕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당시 고령이었는데, 너무 무리하다가 명을 재촉했던 것 같기도 하고...;;;
  • 스카라드 2011/04/03 19:48 # 삭제 답글

    과거 그리스인들에게 멸망당했던 - 진짜로 그랬는지 애매모호함? - 트로이인들이 로마 공화국의 정책을 보면 노발대발하고 "우리 후손이라고 뻥 치지 마."라고 했을 것 같군요.^^; 로마인들도 군사적으로는 그리스인들을 정복했지만 문화적으로 그리스인들에게 제패당했다고 했지요. 로마의 태조 아우구스투스도 인정했던 진리??입니다.('ㅅ')
  • Shaw 2011/04/03 21:19 #

    저런 얘긴 지금 보면 다 그냥 전설이죠.^^ 내친김에 시리아 전쟁까지 이대로 가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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