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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험독현 주석의 해석



 


우리가 보통 보는, 안사고 등의 주석이 본문과 같이 나오는 『한서』에서 지리지의 요동군 험독현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주석이 붙어 있다.

(1)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
(2)臣瓚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
(3)師古曰瓚説是也浿音普大反.

어제 종일토록 이 주석의 해석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으니, 굳이 여기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2)의 '신찬' 주석이다.

'신찬' 이라고 하면 마치 성이 신(臣)씨이고 이름이 찬(瓚) 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사람의 성씨는 알 수 없다. 당나라때 인물인 안사고부터가 벌써 '신찬'의 진짜 성을 모르고 있었다. 『수경주』에는 설찬(薛瓚)이라는 사람이 쓴『한서』의 주석이 종종 인용되어 있는데, 이 설찬이 바로 '신찬'의 본명인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 '신찬' 의 험독현 주석에 대한 논란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대략 같다. 마지막 어구에 나오는 "此" 를 무엇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왕험성인가? 험독인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확실한지 모르겠는데, 지난 경험담 하나를 꺼내보기로 하겠다. 나는 저 구절의 해석이 종래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노태돈 선생님의 『단군과 고조선사』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해석을 보게 되었다. 바로 번동아제님이 소개한 그것이다.

"찬이 말하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에 있다. 이곳은 (왕험성이 아니라) 원래 험독이다."

이 해석은 문맥에 잘 맞을 뿐더러, 나는 개인적으로 왕험성이 요서에 있다는 주장은 부정하는 입장이므로(즉, 통설과 같다) 험독을 왕험이라고 한 응소의 주석을 이렇게 다른 주석가가 완전히 부정했다는 면에서 '퍽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하지만 노태돈 선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아는 분들 가운데 한문 전문가인 선생님 한분께 확인차 질의를 해 보았다. 내심 "노선생 해석이 맞다" 는 말이 돌아오기를 기대했는데, 놀랍게도 대답은 "此는 왕험성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저 주석 자체가 신찬이 쓴 원저가 아닌 후세 사람이 편집해서 만든 주석집에서 나온 것이므로 어떤 식으로 단장되었을지도 모르고, 따라서 저것만 가지고는 그리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그 당시에는 기대가 어긋난 탓에 다소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지금도 내심으로는 노태돈 해석이 적합한게 아닌가 여기고 있다. 나한테 이야기를 해 준 분의 견해가 지금도 같은지 어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느끼기에는, 저와 같은 식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고전 문헌들은 우리가 딱 기대하는 그대로 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此를 왕험성이라고 보게 되면, 응소뿐 아니라 '신찬' 도 험독이 왕험임을 인정한 것 처럼 되어 버린다. 다른 자료들에 근거하여 부정하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왜 고대의 주석가들이 그런 설명을 했을까?' 하고 신경써야 할 기록이 하나 늘어난 셈이므로, 달갑지 않다. 또한, 신단재가 이미 지적한 바이기는 하지만 '신찬' 이 응소의 말에 찬동했다면 그 뒤에 안사고가 왜 "찬의 말이 옳다" 며 한쪽에 찬동하는 주석을 달았는지가 이상하다. 그리고 험독이 요동군 속현이면서 동시에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즉, 어제 하루, 몇번 했던 이야기지만 此를 왕험이라고 보면 문맥에 어긋난다.

그런데 此를 험독이라고 하면 모든게 맞아떨어지는가?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이곳(험독현)은 원래 험독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꼭 그렇게 논리적인 것만도 아니다. 此를 왕험으로 볼 경우 문장이 너무 이상해지기 때문에 단지 상대적으로 더 논리적인 것 처럼 느껴지는 것 아닐까? 그리고 '왕험성이 아니라' 라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고 가정하여 끼워넣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인상은 착시일 수도 있다. 당장 노태돈 선생이 집어넣은
'(왕험성이 아니라)' 라는 부분을 제거해 보고 다시 살펴보자. 저 말이 그 자체적으로 정말 험독=왕험설을 부정한 말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말이 매끄럽게 되기 위해서는
"이곳은 왕험이 아니다."(此를 험독으로 볼 경우) 라거나, "이곳은 험독이 아니다."(此를 왕험으로 볼 경우) 정도가 나오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원래(마땅히) 험독이다" 라고 할 경우, 이것은 험독이 왕험이라는 주장에 대한 부정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험독이 왕험의 별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찬' 이 왕험 험독설을 부정하려 했다면 왜 하필 이런 식으로 말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어법으로도 此는 그 앞에 나오는 왕험성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문에 달린 주석이라는 성격상, 此가 주석 내의 문구가 아니라 본문의 문구를 받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그런데 이것도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응소 주석의 어느 부분을 받는 말일 수도 있지 않은가? 사실 '신찬' 주석은 此를 무엇이라고 해석하건 지리지 본문의 "험독" 에 바로 붙은 것 같지 않다. 험독이 왕험이라고 주장한 응소의 주석(혹은 다른 누군가의 비슷한 주장)이 먼저 제시된 후,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었다고 보아야 자연스럽다. 나는 지금, 완전히 본의는 아니지만 번동아제님 글의 (4)번 항목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모두가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농담임) 해석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응소는 험독이 위만의 도읍이라고 했다. 그리고 물의 험함에 의지했기 때문에 험독으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신찬은 이에 부연하여, 왕험성, 즉 위만의 도읍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고 보고했다. 즉, 정말로 지세가 강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것은 마땅히 험독이 맞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안사고는 눈이 침침하여 신찬의 말을 잘못 보고 응소 주석에 대한 반론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정말 이런 주장을 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말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족이기는 하지만 험독현에 대한 신찬 주석과 비슷한 사례라고 지적되었던 임진현의 경우를 보자.

臣瓚曰 晉水在河之間, 此縣在河之西, 不得云臨晉水也.

그러나 사실 여기에서는 此가 무엇인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글자가 단독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此縣" 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험독현 주석에서도 此만 나오지 않고 此縣 이라고 되어 있었더라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이 험독현을 가리킨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좀 애매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말인가? 요약하자면 이렇게 된다. 어법상으로는 此를 왕험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문맥상으로는 此를 험독이라고 여기는 편이 더 적절하다. 그런데 어느 한쪽의 적합성이 다른 쪽을 물리치게 만들만큼 확실하지 않다.

굔군님은 '신찬' 주석에서 뒷부분에 뭔가 생략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개진했다.(
http://kyonkun.egloos.com/2817481)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굔군님 글에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좀 더 극적인 경우를 가정하자면 원래 신찬의 책에는 있던 말이 안사고의 글로 옮겨지면서 빠졌을 수도 있다. 애초에, '신찬'의 책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글을 어떻게 편집해서 옮겼는지 자체를 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그 옮겨놓은 말이 뭔가 이상하기 때문에, 판단은 신중하게 하되 가능성은 일상적인 경우보다 더 대담하게 열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로, 나는 내놓을 답이 없다. 나는 지금 감히, 이 문제는 명확하게 정답을 내놓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야 노태돈 선생의 해석이 단연 내 지론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므로 '좋은' 해석이고, 此가 왕험인 경우는 좀 생각하기 싫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느 한쪽 해석을 절대 옳은 것으로 여기고 다른 쪽은 한심한 해석, 엉터리 해석으로 비하할만한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제 올라온 번동아제님과 초록불님의 해설과 같은 견지에서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고, 상호 비난은 불필요하다는 점만  인터넷이 사람을 神이 아니면 병신으로 만드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공부하면서까지 그런 풍습을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것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자기가 당했다고 생각해서 똑같이 앙갚음 하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언어 폭력만 일삼으려는 사람은, 그냥 놓아두었다가 나중에 법정에서 보는게 더 좋을 것 같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내 본위대로 한서 지리지 험독현의 주석에서 사용 가능한 정보를 추려내자면, 다음과 같다.


1. 응소는 험독현이 물의 험함에 의지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2. '신찬' 은 왕험성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고 했다. 
3. 안사고는 험독과 왕험성의 관계에 대한 응소와 '신찬' 의 견해가 상치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찬' 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다.
 




 


덧글

  • 소하 2011/11/08 07:28 # 답글

    저의 해석이 문맥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군요. 어쨌든 논리적으로 응소의 말을 부정해야만 하니까요. 변동아제님이나 아샨님의 해독이 가장 타당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 Shaw 2011/11/08 07:59 #

    지지자가 또 한명 늘었군요.(?)

    생각하기 싫은 경우이긴 한데, 찬의 주석 자체가 처음부터 그다지 논리적으로 쓰여있지 않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원의가 무엇이 되었건 말이지요. 그런데 어쨌건 안사고는 그것이 응소에 대한 반박이라고 보았던 것이겠지요.
  • 소하 2011/11/08 08:02 #

    문장의 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이상하기는 합니다. 정확성을 위해서라면 문맥을 따라야 하겠지요.
  • 2011/11/08 08: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haw 2011/11/08 20:39 #

    그런것 같습니다. 저 부분을 가지고 뭔가 논의해 보려 하는건 위험할 듯 싶습니다.
  • 번동아제 2011/11/08 10:28 # 답글

    순수하게 주석을 구성하는 한문 자체의 해석법만으로 봤을 때는 소하님의 해석이 가장 정확한 것이고, 안정적이란 점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Shaw님이 요약하신 부분 "어법상으로는 此를 왕험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문맥상으로는 此를 험독이라고 여기는 편이 더 적절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결론에 해당하는 "어법 차원의 해석과 문맥 차원의 해석 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물리칠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애당초 이 문제가 논쟁의 여지가 없이 분명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토론하거나 장황하게 분석할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此縣自是險瀆也이었다면 직역 외에 추가적인 논의 자체가 필요 없죠.

  • Shaw 2011/11/08 20:41 #

    그렇습니다. 원래는 글자가 전사 과정에서 달라졌고, 그 때문에 뜻이 이상해졌을 더 폭넓게 거론하고 싶기는 했는데, 이건 사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요.
  • 2011/11/08 10: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haw 2011/11/08 20:39 #

    이제 70%.
  • 2011/11/08 11:02 # 삭제 답글

    저렇게 주석 3줄만 보여드리면
    한문전문가님들도 此는 왕검성이라고 하실것입니다.

    하지만
    요동군험독현 본문과 함께 주석을 같이 보여드리면
    此는 본문의 험독현이라고 하실지도 모르죠...
  • Shaw 2011/11/08 20:40 #

    출전을 모르는 분에게 자문을 구하려 한다면 당연히 같이 보여드려야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질문이 잘못된 것입니다.
  • 2011/11/08 21: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haw 2011/11/08 21:19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해당 부분은 오해가 없게 수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굔군 2011/11/08 22:38 # 답글

    음...저의 논지는, (생략된 부분이 없었다 할지라도) 신찬의 문장을 제 해석대로 하면 저런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제 글은 망글이 되기는 했습니다만...하하하하 ^^;;
  • 2011/11/09 00:5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11/09 12:10 # 삭제 답글

    대청일통지에도 此自是 용법이 나오는군요. 아무래도 정말 此는 왕검성 같습니다. ..험독이라는 곳이 패수에서 요동군으로 옮겨갖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欽定大清一統志巻二十四
    宣化府.
    媯河..., 自延慶州東北發源西流逕州城南又西逕懐來縣城南又西南流入桑乾河本古清夷水也今譌曰媯河水經注清夷水出長亭南西逕北城村故城北又西北平鄉川水注之又西北逕隂莫亭又西㑹滄河自下二水互受通稱又西靈亭城水注之又西得泉溝水又西南得桓公泉又西逕沮陽縣故城北又屈逕其城西南流注於濕水按括地志媯水在懐戎本漢潘縣在今保安州西南界此自是清夷水遼史謂媯泉在可汗州城中宣鎮志謂出延慶海沱山皆不察懐戎之移治清夷而誤指也
  • 2013/04/15 23: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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