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노예제는 정복전쟁으로 유지되었는가? 달려라 공화국






고대 로마의 노예제와 관련된 고전적인 이론 가운데 "정복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노예는 정복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포로들로 충당이 되었다. 따라서 로마가 활발하게 정복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는 많은 노예가 저렴하게 공급되어, 노예제 생산 방식이 발달하고 또 유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의 팽창이 끝나고 정복 전쟁이 종결되자 노예제는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이론의 전제 부분인, 대부분의 노예가 전쟁 포로였다는 가정은 한때 정설이었으며, 사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큰 의심없이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60년대 이래 이 가정은 사료상으로나, 수량적인 모델의 측면에서나 몹시 불합리함이 지적되어 오늘날에는 사실상 극복되어야 하는 주장임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노예 공급에 있어 "정복설"은 어째서 부당한가? 첫째로, 로마 제국의 고속 팽창은 1세기 초에 이미 종료되었다. 그 후에도 물론 영토의 확대는 있었으나, 그 이전 시대와 같은 급격한 확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복설"이 옳다면, "노예제의 필연적 위기"는 1세기 중엽쯤에는 심각한 징후를 보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제국의 노예제는 2세기에도 여전히 왕성했다. 둘째로, 우리는 대체로 제국 전체에 걸쳐 노예가 전 인구의 10~20%는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정도의 노예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망으로 인한 손실이 매년 2~3%라고 볼 때 연간 10만에서 40만 가량의 노예가 신규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많은 노예를 발생시킬만한 정복 전쟁이 제국 역사상 매년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실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정복의 가설"은, 노예제가 확대된 원인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기여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제국의 노예제 그 자체가 '유지'된 배경을 설명하는데는 실패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정복을 통한 공급"을, "구입을 포함한, 제국 외부로부터의 공급"으로 치환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제국 외부에 그러한 거대한 노예의 공급원이 장기간에 걸쳐 존재했다고 여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제국의 노예제는 어떻게 유지가 될 수 있었는가? 6,70년대에는 노예들의 '자체 재생산', 즉 이른바 "양육노예"로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활기를 띠었다. 노예가 새로운 노예를 낳아 계속해서 수를 유지시켰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육노예 가설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또 다른 커다란 난관을 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노예들 사이에서는 성비의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하여 정상적인 인구의 자체 재생이 대단히 어렵다고 하는 지적이다.

노예 사이에 왜 성비 불균형이 생겨나는가? 기본적으로 노예는 육체 노동력으로, 따라서 시장 수요는 농장이나 광산, 공장 등에서 힘든 작업을 담당하기에 알맞는 성인 남자 노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여자 노예의 수요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음을 알 수 있지만, 그 비중은 그리 높았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카토는 100유게라(약 76,000평)짜리 포도 농장에는 총 16명의 노예가 필요한데 여자 노예는 그 중 1명만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도시의 상류층 가정에도 남자 노예가 선호된 정황은 다수 발견된다. 고대의 노예제를 현대의 창작물이나 막연한 기대에 비추어, '메이드 천국'이나 '하렘'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자체 재생산'이 가능하려면, 그 적은 수의 여자 노예들이 평균적으로 상당히 많은 자녀를 두었다고 가정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고대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으며, 특히 노예의 아이가 건강하게 유년기를 넘기기란 자유인의 아이에 비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콜루멜라가 쓴 농업 지침서에서는, 많은 아이를 키운 여자 노예에게는 보상을 해 주는데, 특히 3명의 아이를 키운 여자 노예는 일을 면제해 주고, 그 이상을 낳으면 해방시켜주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는 당시 대다수의 여자 노예는 3명의 아이를 양육하지도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면모는, '정복'과 '양육' 이외에 대량의 노예가 공급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매우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스스로 인신을 팔아 노예가 되거나, 납치당해 판매되거나, 혹은 유기된 영아가 노예로 양육되는 등의 경우이다. 그중 첫번째는 수단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두번째는 공권력에 의해 규제될 것임을 감안할 때 마지막, 유기 영아의 노예화 문제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차영길, 「로마 노예 공급원과 쓰렙토스」, 역사와 경계28(1995)
차전환, 「고대 노예제 연구의 쟁점들」, 서양고대사연구11(2002)
W. V. Harris, 「Demography, Geography and the Sources of Roman Slaves」, JRS89(1999)


*물론, 메이드가 노예는 아니다.




덧글

  • 엘레시엘 2013/03/06 13:00 # 답글

    이전 모델리우스씨 사례를 생각해볼 때 굉장히 의미심장하군요;;
  • Shaw 2013/03/06 17:36 #

    거기서 아이를 '제거하는' 방법들을 이야기 했었지요.;;
  • 슈타인호프 2013/03/06 13:43 # 답글

    빈민층의 자발적인 자녀 매매 쪽은 1번의 케이스에 포함해야 할까요?
  • Shaw 2013/03/06 17:37 #

    제가 쓰지 않은 공급원들도 많으니, 그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
  • nyxity 2013/03/06 14:05 # 삭제 답글

    고대 로마의 24시간 보면 유기영아에 대한 묘사가 나오더라구요. 그게 또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 Shaw 2013/03/06 20:35 #

    유기 영아와 관련된 사료가 제법 됩니다.
  • 엑스트라 1 2013/03/06 15:15 # 답글

    채무변제 문제나 비로마시민권자의 범죄로 인해 노예로 추락하는 경우는 유의미한 비율을 차지하지 못하려나요?
  • Shaw 2013/03/06 17:44 #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있기는 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범죄로 인해(상당수는 벌금이나 청구액을 내지 못해) 강제 노역을 하게 된 사람이, 꼭 신분상 노예로 '격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그렇게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되었던 것 같은데...
  • 긁적 2013/03/06 15:21 # 답글

    호오. 흥미로운 주제군요. 포스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Shaw 2013/03/06 17:44 #

    감사합니다.
  • 춘서방 2013/03/06 16:18 # 답글

    영아 납치 말고도 제국 시민/속주민이었다가 추락해서 노예가 되는 케이스도 꽤 있지 않았을까요
    범죄자라든지, 가혹한 세금징수를 못 버티고 노예신세가 된다던지, 혹은 자진해서 소작농->농노 단계를 밟는다던지, 아니면 원수정이나 제정의 미움을 받아서 반역을 했다고 취급을 받았다던지.
  • Shaw 2013/03/06 18:07 #

    예, 아마 그런 사람도 제법 있었을 것 같습니다. 노역형에 대한 이야기는 엑스트라1님 리플에 대한 답글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납세 부담으로 인한 노예화는, 역시 노역형이 아니라면 아마 자기 매각-실상은 비자발적일수도 있는-의 일종일 것 같습니다. 관련된 것으로 비티니아왕 니코메데스의 "내 신민의 대부분이 로마 징세업자들에게 잡혀가서 노예가 되었다"(기원전 104)는 주장이 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규모가 굉장히 컸음을 보여주는 단서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왕의 거짓말일 가능성이 커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농노제는 노예제가 쇠퇴하면서 확산된 현상 같은데, 농노가 아닌 농업 노예라면 역시 자기 매각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 零丁洋 2013/03/06 16:42 # 답글

    노예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채무노예 아닌가요? 채무노예가 가능하면 노예의 끊임없는 공급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부가 해방되어도 자경할 토지가 없다면 원래 주인의 농지를 경작하는 준노예상태를 벗어날 수 없어 보입니다.
  • Shaw 2013/03/06 18:10 #

    채무노예(Nexus)는 기원전 4세기 말에 폐지되어, 더이상 합법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다루는 시대에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겠습니다.
  • 零丁洋 2013/03/06 19:05 #

    그렇군요. 하지만 대규모 노예노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토지가 필요할 것이고 이는 소농의 감소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감소된 소농은 노예는 아니어도 예속화의 과정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Shaw 2013/03/06 20:36 #

    노예 노동의 집중과 대토지가 꼭 불가분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토지라고 해도 그것이 목장이라면 집약적인 노예 노동력은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농장 만연과 소농의 감소를 연관시키는 논의는 사실 고전적이며 지금도 통설의 위치에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제가 몇차례 소개하기도 했듯이 노예제 농장이 얼마나 있었는지와 소농의 몰락상황은 사실 논쟁적인 문제로, 대농장의 만연을 움직일 수 없는 전제로 받아들이고서 노예의 규모를 추정하고 이로부터 소농의 몰락 상황을 다시 추산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소하 2013/03/06 17:07 # 답글

    논란과 의문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추정할만한 최소한의 사료조차 없는가 봅니다. 전쟁의 감소로 공급이 줄었다면 노예상들이 매매뿐만이 아니라 공급에도 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 Shaw 2013/03/06 18:48 #

    상인들의 장부라도 많이 발견되지 않는 한, 수량적으로 다루는데 한계는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3/03/06 18:38 # 답글

    참, 노예제라는 게 간단히 해석될 문제가 아니군요.
  • Shaw 2013/03/06 19:09 #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는 묘한 것들로만 소개를...
  • 행인1 2013/03/06 22:23 # 답글

    이 주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런 전개가 되는군요. 그나저나 노예제를 오랫동안 지탱했다면 대체 유기 영아의 숫자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 Shaw 2013/03/06 23:03 #

    저는 가족 수의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많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노예화된 유기 영아('쓰렙토스')가 정말 전체 노예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는가, 실증적인 데이터는 있는가, 하고 물으면, 뭐라 할 말이 없는게 사실입니다. 이 경우에 속한 사람의 예가 묘비에서 많이 발견되는데다 플리니우스가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요한 문제.... 속주 전체에 관련된 문제" 라고 표현하는 등 자료가 몇종 있기는 하나, 그게 그렇다고 진짜 당시의 수량을 말해 주는건 아니니까요.
  • 2013/03/06 2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06 23: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대공 2013/03/07 00:15 # 답글

    가축들같이 반대로 여성노예가 많은게 유리하리라 생각했는데요
  • Shaw 2013/03/07 00:53 #

    여기에는 효율성의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노예의 아이를 양육해서 새 노예로 만드는 쪽이 총 비용이 저렴했다면, 아마 노예주들은 그쪽을 선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이 그렇지 않았다면, 이는 노예 양육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다른 방법에 비해 저렴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 兕虎 2013/03/07 10:35 # 답글

    오호. 로마노예의 재충전이 외부의 정복노예에서 기인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견해의 글을 보니 신선합니다. 잘 봤습니다. :)
  • Shaw 2013/03/07 22:35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함부르거 2013/03/07 17:57 # 답글

    유기 영아가 노예가 됐다고 할 때, 양육기간의 문제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몇 살 때 노예가 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버려진 아이가 의미 있는 노동력으로 성장할 때까지 최소한 5~10년 정도는 걸리는데 그 사이의 양육을 누가 어떻게 담당했느냐는 의문이 생기네요.

    예를 들어 젖을 간신히 뗀 아이가 팔렸다고 한다면 그 아이를 양육하는데 드는 비용(노동력)은 여자 노예가 낳아서 기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10세 전후에 팔렸다면 양육 수고는 많지 않겠지만 자유인으로 살았던 기억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농촌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수집한 다음 사육(...)해서 팔아 먹는 노예상인이 있었을 거 같다는 기분 나쁜 상상이 떠오르네요... -_-;;;;;;;
  • Shaw 2013/03/07 22:40 #

    예, 충분히 상상해봄직한 일입니다. 지금으로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유기되었다가 노예로 길러진 아이는 대개 영유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제법 큰 아이라면, 버리는 것은 단순한 유기가 아니라 대체로 '판매'나 '유괴 · 납치'의 형태를 띠지 않았을까 해서입니다. 그러나 어떤 근거를 가지고 한 생각은 아닙니다.
  • 나츠메 2013/03/12 02:09 #

    "농촌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수집한 다음 사육해서 팔아 먹는 노예상인이 있었을 거 같다는 기분 나쁜 상상이 떠오르네요."

    그것이 전근대 농업사회의 특질입니다. 물론 동아시아의 경우 거주 이전의 자유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예외로 하더라도 중세 유럽에서는 그런 일이 횡행하였습니다. 물론 유아 인신매매의 경우도 파레토 최적에 도달하지 않은 상황 즉 노동의 한계생산력이 높은 상황일 때만 해당하는 것일 뿐, 인구압으로 인해 사회의 한계생산이 '0'에 수렴하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됩니다. 영아살해가 만연하게 되는 거죠.

    인구사에 있어 영아 유기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는 없지만, 영국에서 19세기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확산되어 <미성년(아동) 비숙련 노동>이 조직적으로 활용되는 것과 맞물려 핵가족 가구형태가 일상적으로 보급됩니다. 아동유기 및 가족해체의 감소를 짐작케 하는 대목인데, 아동 노동의 가구소득 기여가 가능해지자 보육의 인센티브(영아살해 및 영아유기 포기)가 작동한 결과라 봐야 겠습니다.

    후진사회일수록 <아동 노동>의 '기대소득'이 그 아이의 운명의 갈림길이 되는 법입니다.
  • 나츠메 2013/03/10 23:21 # 답글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농업사회에서 '유기영아가 노예 재생산의 일축이 될 정도로 지속적으로 방출되었다'는 명제는 '농업 생산량 정체'의 다른 표현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수확 체감에 의해 노동의 생산성이 감소하면 지배계급의 잉여 수취 역시 지속적으로 정체되기 마련이므로, 지배층이 영아 노예를 대거 부양한다 하더라도 노예의 낮은 노동 생산성에 의해 가시적인 소득 증대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이 경우 단시일 내 생산에 투입하기 어려운 영아에 대한 선호도가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특히 기술자나 검투사 등 특정기술의 오랜 습득을 요구하는 직종이 아닌 단순노동의 농업 노예의 경우 영`유아의 필요성은 더욱 저하됩니다.

    '영아 노예'에 대한 자세한 진술은 리퍼런스의 논문을 참고해야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영아 노예에 대한 강조는 사회적 차원의 계급 재생산 뿐만 아니라 경제적 농업 사회의 생산성을 좀 더 고려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Shaw 2013/03/11 00:18 #

    예,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유기 영아의 노예 양육의 효율성을 보려면 양육비 문제를 수치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기 영아의 양육은 완전한 자연 상태의 노예 양육에 비하면 비용이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노예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일정 비율 이상의 여성 노예를 유지함으로 인해 육체 노동력의 감소가 발생하고, 임신 기간이 길며, 출산한 영아가 주로 원하는 형태의 노동력(성인 남자 노예)이 될 가능성이 낮습니다.(단순히 계산할 때, 성년까지 살아남을 확률 0.5X남자일 확률 0.5=0.25) 그러나 유기 영아는 이미 고도 위험기인 0~1세를 지난, 남자 아이만 선택적으로 구조하여 양육할 수 있으며 여자 노예의 유지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비효율성이 상당히 경감됩니다. 그러나 시장 판매되는 노예 가격과 비교해서 채산성이 있는지는 상당히 고민스러운 문제가 되겠습니다.

    한가지 예로, 만약 2세에 구조된 아이가 16세가 될때까지 15년간 하루 평균 2,100kcal를 섭취한다면, 연간 34.4모디이의 밀을 소비하는 것이므로 103HS이고, 실 양육비는 그 두배라면 15년간 3,100HS가 될 것입니다. 이는, 그 아이가 "충분히 쓸모있는 일꾼"으로 자란다면 시장 가격의 범위 내에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명만을 대상으로 한 너무 단순한 모델이라서 공정한 스터디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노동 생산성에 대한 말씀은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노예 작업장이 충분히 안정되어 있으며, 투입하는 노동력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가정할 때 쓰렙토스까지 포함한 많은 수의 신규 노예와 양립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유기 영아의 양육비 총합이 성인 남자 노예의 시장 거래 가격과 비길만 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어, 카토식의 100유게라 포도 농장에는 16명의 일꾼이 있는데, 같은 사례를 집적시켰을 때 연평균 3%로 노동력이 손실된다면 대략 평균 2년에 한명꼴로 노예를 추가시켜야 합니다. 즉, 상당히 잦은 빈도입니다. 제국 전체로 보면, 노예 노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이미 많은 신규 노예가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노예제 확대가 일어나지 않아도 여전히 많은 노예 수요가 존재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더욱 근본적인 가설이 제기될 수도 있지요. 만약 가능한 노예 공급원이 전부 검토되었을 때, 실은 별 채산성이 없는 것들이었다면- 실은 로마제국의 노예제는 지금껏 흔히 가정되던 것보다 훨씬 소규모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1234 2018/10/10 23:16 # 삭제 답글

    저.... 거의 5년이나 지나긴 했는데.... 대부분의 노예 수요가 남자인데, 만약 양육 방식이라면 남녀 성비는 1:1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만약 노예를 양육하는 방식으로 주로 노예를 보급했다면, 공급 과잉의 노예 출신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보시나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